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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erzlich Willkommen!^^ 테너 정승환과 작곡가 김형민의 독일과 한국에서 사는이야기와 음악이야기가 있는곳 입니다
by 다빛아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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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스카니의 이 작품은 지금 우리 오페라극장에서 연습중인 작품이다. 이 작품의 서곡은 누구나 한 번쯤 들으면 그 매력적인 선율에 금방 빠져들어 버리는 일종의 흡수력이 있다. '카발레리아 루스티카나'는 '시골기사'라는 뜻이며, [사교의 전통적 관습과 사나이들이 전통적 결투의 관습]을 일컫기도 한다. 이 작품은 리코르디 출판사에 경쟁하기 위하여 손쵸니 출판사에서 개최한 1막짜리 오페라의 현상모집에서 1등을 차지하게 된다. 그러나 마스카니는 26살에 이 작품을 통해서 유명한 작곡가가 되었지만 이 이후 더 좋은 작품을 만들지 못한것이 후세들의 평가이다. 이 오페라는 어느부분에서나 남부 이탈리아의 독특한 정경을 물씬 담아 내고 있다. 간주곡 또한 점심과 낮잠 시간에 한순간의 공백이 있는 남부 이탈리아를 잘 표현해 주고있다. 자! 이제 오페라의 줄거리를 한 번 살펴보자. 카발레리아 루스티카나 * 작곡가: P. 마스카니 * 초연: 1890년 5월 17일 로마의 콘스탄찌 극장 * 등장인물: Santuzza 산투차(S or Ms): 마을의 처녀로 투리두를 연모하는 여인 Turridu 투리두(T): 군대에서 제대한 청년 Lucia 루치아(Cont): 투리두의 어머니 Alfio 알피오(Br): 마부 Lola 로라(Ms): 투리두의 옛 애인이며 알피오의 아내 그 밖의 마을의 남녀 농부와 아이들 * 전 막: 전 1막 (전주곡, 간주곡) - 전주곡 - ( Andante Sostenuto, F장조, 4/4박자) 우리들의 귀에 잘 알려진 곡이 막이 오르기 전부터 바이올린으로 우아하고 종교적인 멜로디로 시작한다. 풍부한 관현악의 전주곡으로 여기에는 오페라 중에 나오는 중요한 멜로디들이 환상곡 풍으로 흐르는데 감격의 클라이막스에 이를 도달시켰다가 평온한 상태로 내려오게 한다. 이어서 막 뒤에는 아름다운 시칠리아나의 노랫소리가 들린다. 이것은 단순한 멜로디의 흐름을 지니고 있으며 베르가의 원작에는 로라의 창 아래서 투리두가 원망의 노래를 부르게 되어 있지만 여기서는 로라를 찬미하는 사랑의 노래로 되어 있다. 이 노래는 지금은 알피오의 아내지만 전에 투리두의 연인이었던 그녀에게 영원한 사랑을 고백하는 것이기도 하다. 투리두는 로라의 이름을 부르며 < 우유빛 셔츠처럼 새하얀 롤라여 O Lola di latti la cammisa "내가 만약 죽어 천국에 갈 수 있다 해도 그 곳에 로라가 없다면 가지 않겠노라" >고 까지 한다. 그는 그의 연인 로라를 두고 군대에 입영하였는데 돌아와 보니 로라는 이미 마부 알피오의 아내가 되어 있었다. 그는 새로운 연인 산투차로부터 위안을 받지만 아직도 로라에 대한 사랑이 남아있다. - 제 1 막: 시칠리아 마을의 교회 앞 광장 - 아침의 교회 종소리가 울려퍼지면서 막이 오르면 오른편에는 교회, 왼편에는 투리두의 어머니인 루치아가 경영하는 술집이 있다. 때는 4월로 부활제의 아침이다. 교인들의 합창이 벌어지는데 교회 안으로 들어간다. 온화하고 품위있는 왈츠풍의 멜로디에 이끌려 평화로운 분위기가 전개되는데 여기서 여성합창 <오렌지 향기에 신록은 짙어가고..Gli aranci olezzano>와 뒤이어 남성합창인 봄을 속삭이는 사랑노래 <망아지는 용감하게..Il cavallo scalpita>가 이어진다. 노래가 끝나자 교회로 돌아가는 사람 몇 사람씩 떼를 지어 제각기 헤어진다. 이 때 산투차가 등장하여 불안한 표정으로 투리두의 어머니 루치아에게 투리두의 행방을 묻는다. 산투차는 투리두가 어젯밤 어디를 갔으며 아직도 로라를 사랑하고 있는가를 확인하고 자기의 괴로움을 호소한다. 어머니는 간 곳을 모른다고 하며 내게는 묻지 말라고 한다. 그녀가 다시 애원하자 루치아는 "그는 술을 사러 프랑코 폰테에 갔다."고 대답한다.그러나 산투차는 울면서 "어제 저녁에는 그가 마을에 없었다."고 거짓말이라고 하자, 어머니도 걱정이 되어 그녀에게 어쨌든 방에 들어오라고 한다. 산투차는 이를 거절하고 버림받은 몸이기에 들어갈 수 없다면서 자기의 가련한 신세를 한탄한다. 투리두가 아직도 옛 연인이었던 로라에 대한 사랑을 잊지 못하는 것을 그녀는 눈치채고 혼자서 가슴을 태우는 것이다. 그녀가 이렇게 슬픈 심정에 싸여 주저하고 있을 때 무대 뒤에서는 채찍질 소리와 방울 소리가 나더니 알피오가 유쾌한 기분으로 노래하며 마을 사람들과 함께 들어온다. 이 노래가 유명한 바리톤 아리아 <마부의 노래>이다. 마을 사람들은 그와 함께 노래 부르다가 뿔뿔이 헤어진다. 알피오는 루치아의 인사를 받고 술을 청하는데 그녀는 술이 떨어져서 투리두가 사러 갔다고 말한다. 그 말에 알피오는 이상하게 생각하면서 투리두가 지금 마을에 있다는 것과 오늘 아침에 바로 자기 집 앞에서 보았다는 것을 말한다. 루치아는 놀라며 더 물으려고 했지만 산투차가 만류하므로 그도 떠나 버린다. 이때 교회에서는 부활제의 합창이 울려 나오고 교회 밖에서도 같이 할렐루야의 합창을 한다. 마을 사람들은 무릎을 꿇고 기도를 올리며 산투차의 선창으로 주 예수의 부활을 합창한다. 합창하던 사람들도 교회에 다 들어가 버리고 산투차와 루치아만이 남는다. 루치아는 앞서 왜 알피오와 이야기하는 것을 말렸냐고 이유를 묻자 그녀는 다음과 같이 대답한다. 이것이 유명한 아리아<어머니도 아시다시피(Voi lo sa pete, O mamma)>이다. 즉, 루치아도 알고 있듯이 그의 아들 투리두는 이전에 로라와 약혼까지 했던 사이였으나 로라는 그를 버리고 알피오에게로 갔는데 이제 와서 또 다시 투리두를 유혹하여 그의 손에서 빼앗아 갔다는 내용이다. 로라에게 그이를 빼앗기어 살 보람이 없는 이 몸이라는 대목에서 노래는 절정을 이룬다. 이같은 쓰라린 정경을 본 루치아는 그를 위한 기도를 올리기 위해 교회로 들어간다. 이때 투리두를 만난 산투차는 그를 붙잡고 개심해 줄 것을 원하지만 투리두는 이를 거부하며 질투 많은 너의 노예가 되지 않을 것이라고 하는데, 때 마침 로라가 나타나자 그녀의 유혹을 받고 교회에 함께 가버린다. 흥분한 산투차는 그에게 "부활제에 그대에게 불행이 있으라."는 저주의 말을 하며 쓰러져 눈물을 흘린다. 이 때 알피오가 나타난다. 산투차는 그에게 지금 로라가 투리두와 같이 갔다는 것을 말해 버리는데 알피오는 놀라서 좀더 자세히 말할 것을 청한다. 그리하여 모든 것을 그에게 이야기하는데 아내의 정숙치 못한 행동을 안 알피오는 격분하여 반드시 복수할 것을 맹세한다. 산투차는 자기 때문에 비극이 일어날 것을 생각하고 무서워하며 비밀의 누설을 후회하는데 오케스트라는 그같은 분위기를 한층 더 효과적으로 연주한다. - 간주곡: Andante Sostenuo, F장조, 3/4박자 - 내가 가장 좋아하는 부분인 이 간주곡은 종교적인 분위기를 띤 아름다움 멜로디이다. 풍부하고 조용하게 시작되었다가 오르간과 하아프를 더하여 묵직한 편성으로 극적인 힘을 지닌 새로운 멜로디로 시작된다. 이는 세계적으로 가장 인기있는 최고의 간주곡이다. 연주할 때 막이 오르는데 무대에는 아무도 없다. 교회에서 종소리가 들려오자 마을사람들이 교회에서 나와 루치아의 술집 앞에 모인다. 로라를 옆에 낀 투리두는 환희와 행복감에 젖어 제각기 집으로 돌아 가려는 마을 사람들을 어머니의 술집으로 초대한다. 여기서 마을 사람들은 테이블에 앉아 포도주로 축배를 들면서 <축배의 노래 Viva ilvino ch'e sincero>를 부른다. 투리두는 "사랑을 위해 그리고 행복을 위해"라고 술을 마신다. 노래가 끝나자 알피오가 등장하는데 그는 마을 사람들과 인사를 교환한 후 투리두가 보내는 잔을 거절하면서 "네 술은 받을 수 없다. 내게는 독이다."라고 말하자 그는 "마음대로 하시오."하면서 술을 쏟아 버린다. 이 광경을 보고 있던 여인들은 로라를 데리고 가 버린다. 서로 반목하는 두 사람은 날카로운 몇 마디의 불쾌한 언사를 건네더니 투리두는 알피오에게 달려들어 그 지방의 풍습에 따라 오른쪽 귀를 물고서 결투를 신청한다. 알피오가 그의 도전을 승낙하자, 이미 죽음을 각오한 투리두는 어머니에게 다가가서 자기가 군대에 갔을 때처럼 축복해 줄 것과 만약 내가 돌아오지 않으면 산투차를 부탁한다고 말하면서 결투 장소로 향한다. 루치아는 무슨 영문인지 모르고 이상하게 생각했는데 그는 술이 조금 취해 헛말이 나왔다고 하면서 어머니에게 키스를 하고 알피오의 뒤를 따라간다. 여기서 부르는 고별의 노래는 <어머니! 그 술은 독하군요...안녕히 계세요>라는 제목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루치아는 그의 뒤를 따라가며 이름을 부르지만 그는 돌아보지도 않는다. 마을 사람들도 걱정스런 표정으로 모여드는데, 음악은 강렬한 화음으로 나타나다가 다시 갑자기 피아니시모로 변하고 멀리서 "투리두가 죽었다"고 외치는 소리가 들린다. 마을 사람들이 뛰어와 투리두가 죽었다는 비보를 알리자 놀란 산투차는 그 자리에서 기절하여 쓰러지고 또한 루치아가 넘어지려 하는데 여인들의 부축을 받는다. 일동이 엄숙하면서도 공포의 모습을 하고 있는 사이에 비극적인 줄거리의 막은 내린다. 마스카니는 이 오페라를 8일만에 완성했다고 한다. 곡을 만들어 내는 작곡가의 힘든 고통과 희열을 나는 아내의 옆에서 참 많이 지켜보았다. 그것은 흡사 밤을 새워가며 자식을 낳는 진통과도 같은 것이라 생각한다. 그런 면에서 아무리 전1막짜리 오페라이지만 오페라를 8일만에 완성하였다는 것은 그의 정열을 여지 없이 보여주는 대목인것 같다. 그 후 그는 10여편의 오페라를 더 작곡하였지만 큰 성공을 거두지는 못하였다. 하지만 그의 음악을 향한 정열은 지금도 이 오페라의 간주곡처럼 남부 이탈이아의 정경과 함께 내 마음속에 깊이 남아있다. 팔리앗치 (2막 ) 대본- 루제로 레온카발로 작곡- 루제로 레온카발로 초연- 1892년 5월 21일, 달 베르메 극장(밀라노) 때, 장소- 1865~1870년경의 성모 피승천제 날, 이태리 카라블리아 지방의 몬타르토 제 1막 칼라 브리아의 몬타르토마을. 마을 입구 때는 8월 15일 성모 승천제를 축하하기 위해 마을 사람들은 성장을 하고 모두 유쾌한 모습으로 떠든다.매년 이맘 때면 이 곳 노천 가설 무대에서 하는 익살스런 광대 팔리앗치 일행이 오는 것을 구경하기 위해 사람들은 모여든다. 그리고 팔리앗치 일행이 왔다면서 모두들 합창을 한다. 페페를 선두로 당나귀를 끄는 마차에는 단장인 카니오와 그의 아내 넷다가 타고 있다. 카니오는 북을 치면서 마을 사람들에게 일일이 답례를 하고 있다. 그는 사람들이 많이 모인 자리에서 그 날 저녁 7시부터 재미있는 극을 보여드리겠다고 말한다. 카니오가 차에서 내리고 넷다가 내리려고 할 때, 전부터 넷다를 짝사랑하고 있던 곱추인 토니오가 손을 내밀어 부축하려고 한다. 그 때 카니오가 그를 한 대 치게되고, 토니오는 마을 사람들에게 웃음거리가 된다. 토니오는 두고보자며 사라져 버린다. 카니오는 마을 사람들에게 이끌려 한 잔 하러 가게 되고, 토니오에게도 같이 가자고 하지만, 나귀를 돌봐야 한다며 거절해 버린다. 그 모습을 본 마을 사람들은 토니오가 넷다에게 가려는 가 보다면서 카니오에게 농담으로 주의하라고 말한다. 그러자 카니오는 그런 말마라며 무대에서라면 몰라도 다른 곳에서 그렇다면 용서못한다고 한다. 그러는 동안에 교회에서는 종솧리가 들려오고 이것은 축제일 저녁 예배 소리이다. 그 소리와 함께 사람들은 퇴장한다. 이 때 넷다는 이 마을 젊은 청년인 실비오를 기다리고 있다. 얼마전부터 남편의 눈을 피해가며 실비오와 사랑에 빠져 있었다. 그녀는 앞서의 남편의 태도를 보고 혹시나 그 비밀을 안건 아닐까 하고 근심에 빠져 있었다. 그러나 그녀는 그 같은 무서운 생각을 버리고 하늘을 나는 새들을 바라보며 어렸을 때 어머니가 새에 대해 얘기해준 일을 회상하면서 '새의 노래'를 부른다. 이 무렵 토니오가 몰래 숨어 있다가 그녀에게 발각되자 그녀의 노래소리에 반했다고 한다. 그렇지만 넷다는 그를 상대도 하지 않는다. 토니오는 보잘 것 없는 추한 몸이지만 남과 같이 사랑과 고민이 있다는 사랑의 고백을 한다. 그는 넷다에게 사랑의 고백을 하면서 강제로 키스하려고 하지만 이에 놀란 그녀는 회초리로 그를 친다. 그러자 토니오는 두고보자며 가 버리고 만다. 잠시 후 실비오가 나타나 둘은 사랑의 이중창을 부른다. 그는 술집이서 몰래 빠져 나와 그녀를 찾아 온 것이다. 그들은 열렬한 포옹과 키스를 주고받으며 이 곳에서 도망칠 것을 약속한다. 이 두사람의 행동을 몰래 지켜보고 있던 토니오는 카니오를 데리고 오는데 카니오는 이 두사람의 행동에 격분한다.그러나 실비오는 먼저 돌담을 넘으면서 밤에 이 곳에서 넷다와 만나기로 약속한다. 카니오는 그냥 돌아와 넷다에게 같이 있었던 남자의 이름을 대라고 하며 대답을 하지 않으면 칼로 찌르겠다고 위협하지만 넷다는 이를 거절한다.카니오가 단도를 번쩍이자 페페는 말리면서 손님들이 밀려오니 상영 준비를 하자고 주의를 시킨다. 토니오는 그 사나이가 오늘 밤 올테니 기다리라고 그에게 얘기해주면서 개막 준비를 서두른다. 이 때 혼자 남은 카니오는 넷다에게 배반당해 비통한 심정인데도 불구하고 우스꽝스러운 광대의 의상을 입고 남을 웃겨야 하는 자신의 괴로운 신세에 한탄하는 아리아를 부른다.카니오가 눈물을 흘리면서 맥없이 무대쪽으로 퇴장하며 막이 내린다. 제 2막 마을 입구 (1막의 장면과 같음) 마을 사람들이 연극을 구경하기 위해 모여든다. 페페는 나팔을 불며 등장하고 토니오는 북을 친다. 사람들이 빨리 연극을 시작하라고 재촉하는 가운데 넷다는 사람들에게서 돈을 모으기 위해 돌아다니다가 실비오에게 조심하라고 조용히 이야기한다. 조용한 합창으로 막이 열리면서 콜롬비나로 분장한 넷다가 그의 남편 팔리앗치가 돌아 올 것을 기다리고 있다. 극의 제목은 ' 남편이 집에 돌아온다' 로 남편인 팔리앗치가 없음을 다행으로 여긴 콜롬비나는 자신의 정부인 아레키노를 맞이하기 위해 하인 타데오에게 음식을 사러 보내고 기다리고 있는 중이다. 그 때 기타 소리가 들리며 아레키노로 분장한 페페가 창밖에서 세레나데를 부른다. 토니오는 타데오로 분장하고 나타나 우스운 몸짓으로 주인도 안계시니 콜롬비나에게 자신의 마음을 말해봐야지 하며 그녀에게 사랑을 고백하지만 그녀는 이에 상대도 하지 않는다. 타데오는 그래도 듣지 않고 그냥 말을 늘어놓고 있을 무렵에 복면을 한 아레키노가 타데오의 귀를 쥐고 밖으로 쫓아 버린다. 그는 잘못했다면서 밖에서 망을 보고 있겠다며 두 사람에게 축복을 하고 퇴장한다. 남은 두사람은 사랑의 2중창을 부르고 나서 약병을 들어 수면제를 팔리앗치에게 먹이고 둘이 도망치자고 한다. 그 때 타데오는 팔리앗치가 돌아왔다고 하면서 들어온다. 아레키노는 도망치면서 오늘 밤 약속을 잊지 말라고 한다. 콜롬비나는 '그러면 오늘 밤, 이젠 영원히 그대의 것'이라고 대답한다. 이 대사는 앞서 넷다가 실비오에게 한 말과 똑같은 말이었다. 이 말을 듣고 팔리앗치역으로 분장한 카니오는 기분나쁘게도 똑같은 말이라고 기분나빠하다 잠시 연극이란 것을 잊고 있다가 간신히 정신을 정신을 차려 극을 계속 진행한다. 근데 지금 여기있던 사나이가 누구냐고 대든다 .그녀는 타데오라고 말하고 장안에 숨어있던 타데오가 이끌려 나온다. 카니오게 그에게 묻자, 타데오도 그렇다며,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고 말해 관중들을 웃긴다. 그 말을 들은 카니오는 자신이 놀림감이 된 걸로 생각하고 무심히 객석으로 시끄럽다고 꾸짖는다. 여기서 연극과 현실을 혼동하고 있는 그는 그 남자의 이름을 대라고 계속 말한다. 넷다는 콜롬비나의 역을 계속하면서 카니오를 연극으로 돌려보려고 애를 쓰지만 카니오는 격분하여 모자를 벗어 던지면서 이제 자신은 팔리앗치가 아니라며 격분한 상태에서 아리아를 부른다. 그러자 관중들은 이것도 극의 일부라고 생각하고 잘한다고 박수를 보내며 즐거워한다. 연기가 능하다며 모두 감탄할 무렵 실비오는 극으로서는 너무 심하다며 더 이상 견딜 수가 없다며 투덜거린다. 카니오는 계속 자신의 심정을 노래하고 ,이에 관중들은 더욱 실감을 느끼며 환호를 보낸다. 넷다는 자신을 쫓아내도 좋다며 빈정거린다. 카니오는 그 놈이 누구인지 이름을 대라고 말하고, 넷다는 지금 있던 사람은 아레키노였다고 한다. 이에 카니오는 단도를 빼들고 진심으로 하는 말이니 그 사나이의 이름이 뭔지 대라고 고함친다. 이 고함소리에 마을 사람들은 상황이 이상하게 돌아간다고 생각한다. 페페는 말리려하나 토니오는 뿌리치고 만다. 이 때 관중속에서는 이러한 모습에 무서움을 떨어 도망치는 사람이 생기게 되고 , 이에 실비오는 흥분한 나머지 칼을 빼들고 뛰어 올라가려하나 영문을 모르는 관중들은 이를 말린다. 넷다는 죽어도 말할 수 없다고 한다. 그 말에 격분한 카니오는 칼로 그녀를 찔러 버리고, 넷다는 쓰러지면서 실비오에게 살려달라고 말한다. 이에 실비오가 그녀에게 뛰어가니 이모습을 본 카니오가 실비오인 걸 알고 달려들어 칼로 찔러 죽이고 만다. 관중들이 모두 일어나 혼잡을 일으키고 있을 때 카니오는 실신한 사람처럼 칼을 땅에 떨어뜨리고 비통한 어조로 희극은 끝났다고 노래하며 인사를 한다.
이 오페라는 질다의 아리아가 단연 으뜸이라 할 수 있다. 바람둥이 만토바(두카)를 사랑할 수 밖에 없는 질다의 어쩔 수 없는 사랑과 아버지의 갈등에서 빚어지는 스토리의 전개는 전체적으로 박진감이 넘친다 할 수 있다. 대표적으로 만토바의 "이것이냐 저것이냐"와 "여자의 마음"은 많은 사람에게 알려진 유명한 곡이다. 질다가 창문앞에서 부르는 "Caro nome 사랑하는 그이름~~"를 무대뒤에서 듣고 있으면 닭살이 돋을 정도로 중음과 저음의 유려한 선율과 카덴짜가 참으로 베르디의 진가를 보여준다 할 수있다. 이 공연 내내 참 즐거웠던 기억이난다 리골렛토 ( 3막) 원작- 빅토르 위고의[임금님의 즐거움] 초연- 1851년 3월 11일 페니체 극장(베네치아) 작곡- 주제페 베르디 때, 장소- 16세기, 만토바 제 1막 만토바 공작의 궁정 짧은 서주가 음산한 분위기를 조성하며 연주되고 막이 열리면 방탕한 만토바 공작의 궁전 넓은 홀에서 무도회가 열리고 있다. 호색가인 만토바 공작은 머지 않아 예쁜 소녀가 자기 수중에 들어 올 것이라고 말하며 3개월동안 매주 일요일 교회에서 만난 아가씨의 이야기를 신하에게 말한다. 그녀는 시내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서 살고 있는데, 매일 밤 이상한 사나이가 그 곳을 방문하는 것을 보았으며,그러나 그 사나이의 정체를 알 수 없다고 말한다. 그런 뒤 공작은 백작 부인에게 윙크를 보내며 자신의 주위에 있는 여성은 모두 좋아 보인다는 호색가의 노래를 부른다. 그리고 나서 공작은 체프라노 백작 부인과 춤을 추려하는데, 체프라노 백작이 이를 질투한다.공작의 신하인 우스꽝스런 곱추 리골렛토가 합세하여 백작을 비꼬아 놀리자 백작은 화를 낸다. 공작은 리골렛토에게 백작부인이 마음에 드는데 그 남편이 시끄럽게 굴고 있으니 어떻게 해서든지 쫓아내라고 한다. 그 때 백작이 나타나 시비를 걸지만 공작과 리골렛토는 이를 가볍게 처리해 버린다. 다음에 나타난 사람이 만토바공작에게 자신은 딸이 농락당한 몬테로네 백작이라고 말하며 그는 공작의 죄를 책하고 나서 저주를 받으라고 말한다. 리골렛토가 조소하자 백작은 노하여 어버이의 분노가 어떻다는 것을 너도 알게 될 날이 있으리라고 저주한다. 그 말을 들은 리골렛토는 갑자기 얼굴이 창백해진다. 리골렛토가 자신의 딸이 질다를 숨겨 둔 한적한 집 어두컴컴한 밤에 리골렛토가 걸어가고 있는데, 그 뒤를 살인청부업자인 스파라푸칠레가 따라가고 있다. 두 사람은 이야기를 주고 받는다. 리골렛토가 문 앞에 들어서자 딸 질다가 나와서 팔에 안긴다. 리골렛토는 딸의 신변이 불안하여 어디 나갔었느냐고 묻자 질다는 교회외에는 아무 곳에도 가지 않았다고 말한다. 그리고 이 곳에 온지 3개월이나 되어 세상일이 어떻게 되어 가는지도 모르겠다며 나가고 싶다고 말하나 리골렛토는 안된다고 대답한다. 리골렛토는 유모 지오반나에게 문단속을 잘하라고 부탁한다. 이 때 공작이 학생으로 변장하고 뜰 안에 등들어와 나무 뒤에 숨는다. 리골렛토가 유모에게 딸이 교회에 갈 때 누구와 같이 가느냐고 묻는다. 이 목소리를 들은 공작은 깜짝 놀라며 그 소녀가 리골렛토의 딸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질다가 유모에게 자신의 마음 속에 있는 사랑의 고민을 이야기하고 있는데, 그 때 숨어있던 공작이 나타나 질다 앞에 무릎을 꿇고 사랑을 고백한다. 질다는 대담하게 나타난 이 청년이 교회에서 만났었고, 또 이제는 꿈에까지 나타나는 사랑하는 사람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질다가 공작의 이름을 묻는데 , 그 때 마침 이 집 문밖에 체프라노와 그의 부하들이 찾아온다. 유모가 밖에 발소리가 난다고 말하자 질다는 그것이 아버지 일 것이라고 말하며 청년을 내보낸다. 체프라노와 부하들은 리골렛토에 대한 복수로 그의 딸을 첩으로 착각하고 그녀를 훔쳐가기 위해 찾아 온 것이다 . 이 때 리골렛토가 자신에 대한 저주의 말을 생각하며 나타난다. 그러나 리골렛토는 결국 속임을 당하여 질다를 잃어 버리고 만다. 리골렛토는 질다를 부르며 절망과 공포에 휩싸인다. 제 2막 만토바 공작의 집 만토바 공작이 나타나 아름다운 소녀를 누가 훔쳐갔는지 리골렛토의 집에는 아무도 없었다고 말하며 꼭 북수하겠다고 다짐한다. 이 때 체프라노와 부하들이 들어와 어젯밤에 리골렛토의 연인을 훔쳐 왔다고 말한다. 그 연인이 있었던 곳이 어디인지를 물어 그 연인 있었던 곳이 바로 질다가 있었던 곳임을 안다. 그리고 그 연인이 질다임을 알고 크게 기뻐하며 그녀를 보러 나간다. 그 곳에는 리골렛토가 슬픔을 감추지 못하고 등장하는데, 귀족들이 아직도 그녀를 그의 첩으로 오해하고 리골렛토를 조롱한다. 그 후 자기 딸이 공작의 방에 있다는 것을 암과 함께 일동도 또한 그녀가 리골렛토의 딸이라는 것을 알고 놀라워 한다. 이 때 리골렛토가 딸을 돌려달라고 울면서 아리아를 부른다. 이 때 질다가 공작의 방에서 나와 아버지에게 안긴다. 질다는 슬픔에 가득 차 아리아를 부르며 지금까지의 사실을 고백한다. 이 말을 듣고 리골렛토는 딸을 위로하며 이 불행은 자신이 가져 온 것이라며 눈물로서 근심을 씻어 버리자는 뜻의 노래를 부른다. 그는 딸과 함께 이 곳을 떠날 결심을 한다. 그리고 리골렛토는 공작에게 복수할 것을 맹세하고 딸을 위로한다. 제 3막 민치오 하반에 있는 자객 스파라푸칠레의 주막 집안에서 스파라푸칠레가 혁대를 고치고 있다. 공작의 암살 계획을 세우고 있다. 밖에는 아직 공작을 단념치 못한 딸에게 리골렛토가 공작의 정체를 보여줄테니 복수를 해야 한다고 설득하고 있다. 그러나 질다는 공작을 사랑하고 있다면서 그의 목숨을 살려달라고 애원한다. 리골렛토는 공작이 질다를 배신해도 사랑하겠느냐고 물으며 벽에 뚫어진 구멍으로 방안을 들여다 보게 한다. 방안에는 공작이 군인으로 변장하고, 주인에게 술과 방을 달라고 말하고 있다. 술을 청한후 그는 '여자의마음'을 노래한다. 이 때 자객 의 누이동생인 막달레나가 2층에서 내려오는데, 그녀는 오빠의 일을 돕기 위해 아름다운 집시의 몸차림을 하고 있었다. 한편 스파라푸칠레는 밖으로 나가 리골렛토와 의논한 후 강변으로 나간다. 방에는 제각기 다른 감정을 지니고 있는 4사람이 4중창을 부른다. 이 때 공작은 막달레나를 유혹하고 있다. 이 모습을 본 질다는 실망하고 리골렛토는 격분하게 된다. 리골렛토는 딸에게 집으로 가서 남장을 하고 베르나로 가라고 말한다. 자객이 들어오자 리골렛토는 그에게 약속한 금액 절반을 주고 나머지는 자루에 공작의 시체를 가져 오면 주겠다고 말한다. 자객은 그의 시체를 강에 버리겠다고 하지만 리골렛토는 공작의 시체를 보아야겠다며 격분한 음성으로 '그놈의 이름은 죄요, 내 이름은 벌이다'라고 말하며 나간다. 사방은 어두워지고,비가 오는지, 번개가 번쩍이고 있다. 자객은 이제부터 일을 시작하려 하는데, 그의 누이동생이 공작에게 반하여 진심으로 공작을 사랑하고 있다고 말한다. 공작은 비바람이 몰아치므로 자고 가겠다고 말하며 2층으로 올라간다. 막달레나가 침실에 올라가 칼을 자객에게 준다. 이 때 남장을 한 질다가 밖에 나타난다. 공작을 잊을 수 없어 다시 돌아와 방안을 들여다보고 있다. 방안에는 자객과 그의 누이동생간에 언쟁이 벌어지고 있는데, 공작에게 반한 누이동생은 차라리 리골렛토를 죽이라고 애원을 하고 있다. 스파라푸칠레가 큰 자루를 던지며 누이동생에게 수선하라고 말한다. 그것이 무엇이냐고 묻자 바로 공작의 시체를 넣을 자루라고 말한다. 그러나 막달레나가 계속 애원을 하자 스파라푸칠레는 하는 수 없이 밤중에 다른 손님이 오면 그를 대신 죽이자고 말한다. 이것을 엿들은 질다는 자기가 대신 죽을 결심을 하고 문을 두드린다. 밖에서는 천둥이 진동하는데, 막달레나는 연인을 살리려고 스파라푸칠레에게 빨리 문을 열라고 말한다. 문이 열리고 질다가 들어온다. 급히 불이 꺼지고 비극이 벌어진다. 폭풍우가 점차 사라지고 밖에서 리골렛토가 결과를 확인하려고 찾아온다. 12시 종을 칠 때 그는 문을 두드린다. 자객으로부터 큰 자루를 들고 등불을 달라고 말한다. 자객은 없다고 말하며 나머지 돈을 받고 집안으로 들어간다. 리골렛토가 기뻐하며 자루를 가져다 버리려고 하는데, 갑자기 집안에서 공작이 부르는 '여자의 마음'이 들린다. 놀란 리골렛토가 자루를 열어 보니 그 속에는 빈사 상태의 질다가 들어 있다. 질다가 가는 목소리로 심장을 가리킨다.그리고 찔린 곳을 가리키며 이 일은 자기가 사랑하는 공작을 위해 스스로 저지른 일이라고 말한다. 복수가 딸에게 미쳤다고 리골렛토가 말하는데, 질다가 이제 자신은 죽을 것이라며 자신의 일과 공작의 일을 다 잊어달라고 말한다 그리고 덧붙여 불행하게 죽는 자신을 위해 기도를 해달라고 말한다. 리골렛토가 죽으면 안된다고 말하지만 질다는 숨을 거두고 만다. 리골렛토는 저주를 외치며 질다의 시체 위에 몸을 던지고 실신해 버리고 막이 내린다. -오페라극장-
이 오페라는 푸치니의 달콤하면서도 아름다운 선율을 잘 보여주는 그의 대표작이라 할 수 있다. 긴장된 하나의 드라마를 연출해야 하는 오페라에서 토스카는 그야말로 아름다운 캐릭터의 릴릭 드라마틱한 소프라노... 더 나아가서 드라마틱하고 스핀토한 소프라노가 공연을해야 푸치니의 이 오페라에 걸맞는다고 할 수 있다. 우리가 공연할 당시에는 독일 소프라노 "Ruth Staffa"라는 여자가 노래를 했는데....개인적으로 참 아쉬웠다. 그 오페라 가수는 소리의 크기는 그런데로 좋았지만 음정이 흔들릴 정도로 병적인 비브라토가 있어서 아리아건 앙상블이건 모두 아쉬웠다. 그리고 몸이 조금더 갸날펐으면 더욱 오페라가 빛났을건만.... 오페라는 솔직히 오디오, 비디오가 다 되면 여러모로 참 유리하다. 가슴아픈 현실이지만 유럽에서도 그것은 무시할 수가 없다 -.- 토스카 (3막 ) 원작- 빅토리안 사르두의 [라 토스카] 작곡- 자코모 푸치니 초연- 1900년 1월 14일, 코스탄치 극장(로마) 때, 장소- 1800년 6월, 로마 제1막 성 안드레아 교회의 내부 성 안젤로의 감옥에서 탈출한 국사범인 안젤롯은 죄수 옷을 입은 채로 도망을 쳐서 누이동생이 가르쳐 준 열쇠를 찾아 안타반티 성당문을 열고 몸을 피한다. 성당지기가 손에 화필을 한 줌 쥐고 들어와 '붓들은 왜 이리 무디고 더러울까 아무도 없는데'라고 말하는데, 이때 종소리가 울리자 그는 무릎을 꿇고 기도한다. 카바랏시는 마리아의 초상화를 그리려고 등장하여 문지기에게 화면을 벗기게 한다. 성당지기는 화폭을 유심히 쳐다보더니 '매일 이 곳에 기도하러 오는 아름다운 부인의 초상화'라고 말하면서 묻는다. 그러자 그는 웃으며 그렇다고 대답한다. 그는 포켓 속에서 초상화가 새겨져 있는 메달을 꺼내어 화면과 비교해 본다. 그는 그림을 그리기 시작하는데, 아무도 없다고 생각하고 있던 안젤롯은 그의 친구인 카바랏시와 만나게 되자 놀란다. 옥문을 파괴하고 왔다는 그의 말을 듣고 급히 성당 문에 열쇠를 잠근 후 카바랏시는 그를 도와 주겠다고 말한다. 이 때 밖에서 '마리오'하고 부르는 토스카의 소리가 들려온다. 그녀에게 알리는 것을 두려워하는 카바랏시는 빵과 술이 들어있는 바구니를 그에게 주고 안젤롯을 성당으로 들여 보낸다. 밖에서 토스카는 계속 찾지만, 문이 잠겨있으므로 누구와 밀회나 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하고 의심을 하나 그대를 사랑할 뿐 이라는 카바랏시의 말을 믿고 성모상 앞에 꽃을 놓으며 꿇어 앉아 기도를 올린다. 토스카는 그에게 오늘밤 음악회가 끝나면 시골로 가자고 말한다. 그리고 그녀는 전원생활의 즐거운 사랑노래를 부른다.그는 이제부터 일을 해야하겠으니 돌아가 달라고 말한다. 그녀는 돌아가려고 하다가 그리는 초상화를 구경하기 위해 되돌아온다. 그림을 본 토스카는 그것이 안타바티가의 딸을 모델로 한 것으로 알고 앞서 숨긴 사람이 그녀임에 틀림없을 거이라고 대들면서 그 눈이 같다는 말을 한다. 카바랏시의 설명으로 의심을 푼 토스카는 그림에 그린 푸른 눈을 지우고 그 눈을 검게 해달라고 부탁한다. 그 후 안제롯이 성당문을 향하여 나타나자 카바랏시는 그에게 문을 열어주고 그를 맞아 굳은 악수를 나눈다. 카바랏시는 그의 누이동생에게 여자 의복을 주비시켜 그 옷을 입고 도망갈 것을 권하며 만일의 경우 정원 안의 낡은 우물에 비밀의 지하실이 있다고 가르쳐 준다. 카바랏시가 안젤롯을 먼저 자기 집으로 피하게 하려고 할 때 대포소리가 들려오므로, 이들은 탈옥한 것이 발각됐는가하며 떠나려고 하는데, 사람들의 발자국 소리가 들려오므로 성당안에 다시 몸을 숨긴다. 이 때 성당지기가 '대승리다'하며 뛰어 들어 오는데, 카바랏시가 없는 것을 알게 된다. 성당지기는 나폴레옹 군대가 패했다고 전하고 사람들은 웃으며 주님께 영광의 합창을 부른다. 거기에 갑자기 스칼피아가 스폴렛타와 그 밖의 경찰관을 대동하고 나타난다. 그는 국사범인 죄수가 도망쳤으며 그가 숨은 곳을 모르느냐고 묻는다. 그들은 성당으로 들어가 조사하다가 안타반티 후작 부인의 문장이 붙은 부채를 찾아 가지고 이 것이 값진 수확이라고 말한다. 그는 다시 그림의 초상화를 보고 그 작자가 누그냐고 묻는다. 그러자 검찰관 한 사람이 성당에서 카바랏시가 안젤롯에게 준 점심이 들어 있던 바구니를 발견하고 들고 온다. 성당지기는 점심이 바구니 안에 들어 있었다는 말을 듣고 그는 그것을 분명히 안젤롯이 먹은 것이라고 단정해 버린다. 이 때 토스카가 들어오며 카바랏시를 찾았으나 어디로 갔는지를 알 수 없다고 성당지기가 말한다. 토스카는 그가 나를 속였다며 분개한다. 토스카가 십자를 긋자 스칼피아는 토스카에게 사람들이 많이 모여든 상태에서 부채를 꺼내어 '그 것이 그림옆에 떨어져 있는 것으로 보아 분명히 누가 도망칠 때 떨어뜨린 것이다'라고 말하며 토스카의 마음을 선동시킨다. 토스카는 부채의 무늬가 안타반티 가의 것인 것을 알고서 스칼피아가 나쁜 맘을 품어 웃음을 띠고 있는 줄도 모르고 도리어 카바랏시를 믿었던 것에 대해 탄식한다. 잠시후 종이 다시 울리자 점차 사람들이 많아진다. 토스카는 사람들의 눈을 피하면서 카바랏시의 변절을 분개한다. 그리고 그녀는 마리아의 그림을 향하여 지옥에 떨어지라고 고함친다. 스칼피아가 토스카를 친절히 보낸 후 스폴렛타에게 마차를 타고 그 여자에게 들키지 않게 따라가 보라고 말한다. 스칼피아는 자신의 성공을 혼자서 기뻐하는데, 그 때 추기경과 그를 따르는 높은 성직자들이 나타난다. 얼마 후 제자들이 기도를 시작하자 군중들이 이에 화답한다. 한편 토스카를 자신의 수중에 넣으려는 스칼피아는 여기서 '모놀로그'를 계속한다. 종소리에 군중의 합창이 벌어지는데, 스칼피아도 이에 가담하여 기도의 음악이 들린다. 제 2막 파르네제 궁전의 2층 스칼피아의 방 스칼피아는 식사를 하고 있는데, 그는 시계를 보면서 초조한 빛을 보이고 있다. 그는 지금쯤이면 음모자들을 체포했을 것이며 안젤롯과 카바랏시는 내일 교수대에 가게 될 것이라면서 독백을 한다. 그는 부하를 불러 토스카가 있는지 물어 본다. 여왕이 개선장군을 위하여 개최한 축하음악이 들린다. 스칼피아는 메모를 적어서 토스카에게 전하라고 말한다. 그는 토스카를 힘으러 얻을 것이라며 노래를 부른다. 그런데 스폴렛타가 들어와 안젤롯은 놓쳤으나 카바랏시는 체포했다고 보고한다. 카바랏시가 경찰에 이끌려 나타나는데, 그느 이같이 불법으로 구속하는 것에 대하여 노한다. 스칼피아는 그가 안젤롯에게 식사와 옷을 가져다 준 것에 대해 물어보자 그느 이를 강력히 부인한다. 이 때 토스카가 들어와 그에게 가서 '아니 당신이 '라고 말한다. 카바랏시는 본 것을 말하지 말아 달라며 귓속말로 말하자 그녀도 이를 수긍한다. 스칼피아는 카바랏시를 고문하여 안젤롯이 숨은 곳을 대라고 말하지만 그는 자백하지 않는다. 그런데 토스카는 심문실에서 애인이 고문 당하는 고통소리에 견딜수가 없다. 스칼피아가 더욱 심한 고문을 명령하자 그 비명소리를 참지 못해 스칼피아에게 정원의 우물속이라고 말한다. 그리하여 고문은 중지되고, 피투서이가 된 카바랏시는 토스카의 소원으로 인해 운반되어 나온다. 의식을 회복한 카바랏시는 토스카에게 어떻게 된거냐고 물어보지만 토스카는 대답하지 않았다고 말한다. 그러나 스칼피아가 정원의 우물로 가자고 명한 사실을 알게 된 그는 격분한다. 이 때 메라스의 군대가 나폴레옹 군대에게 패했다는 말을 듣고 카바랏시는 이를 기뻐한다. 그는 토스카가 말리는 말을 듣지 않고 '스칼피아도 죽일 것이다'라고 욕하자 스칼피아는 노하여 교수대로 끌고가라고 명한다. 토스카도 같이 가려고 하자 스칼피아는 토스카를 막으면서 안된다고 말한다. 그는 토스카를 오게 한 후 같이 식사를 하면서 유순히 이야기를 한다. 토스카는 돈을 내고 연인의 목숨을 구해내려고 하나 스칼피아는 여기서 본심을 드러내어 당신의 사랑만이 그를 구할 수 있는 길이라고 말한다. 토스카는 여왕에게 호소하면 된다는 생각이 나서 나가려고 하자 사형수를 구해주는 것은 자기뿐이라고 위협하면서 토스카를 쫓아간다. 토스카는 도와달라고 말하면서 스칼피아를 피해 돌아가자 군대의 북소리가 들려온다. 그는 토스카에게 저 소리는 사형장으로 가는 행진의 북소리라고 말하면서 이제 곧 연인의 죽음과 만나게 될 것이라고 말한다. 슬픔에 쌓여 소파에 쓰러진 토스카는 하나님께 어찌하여 자기를 홀로 버려두냐며 호소한다. 그녀는 스칼피에게 애원하자 그는 그녀를 위로한다. 이 때 스폴렛타가 나타나 안젤롯은 발각되자 자살하였고 카바랏시는 지시가 있는대로 집행할 준비가 되어 있다고 보고한다. 그는 토스카에게 은근한 말로 어찌하겠냐고 묻자 토스카는 하는 수없이 그의 요구를 들어주기로 한다. 그는 스폴렛타에게 방법을 바꾸었다면서 그를 팔미에리 백작과 똑같이 거짓총살하라고 말하면서 의미있는 눈짓을 보낸다. 그가 나간 후 스칼피아는 토스카를 재촉하나 그녀는 카바랏시와 외국으로 가기위해 여권을 마련해 달라고 말한다. 스칼피아는 펜을 들고 여권을 쓰고 있는데, 이 때 토스카는 포도주를 한모금 마신다. 그가 여권을 다 쓴 후에 토스카에게 포옹하려고 가까이 다가가자 그녀는 가지고 있던 칼로 그의 배를 찌른다. 잠시후 스칼피아가 죽자 손수건에 물을 축여서 손을 씻은 후 그의 손에 있던 여권을 갖는다. 다시 시체의 머리 양쪽에 촛대를 세우고 벽에 걸린 십자가를 가슴에 얹은 후에 조용히 문 밖을 나간다. 제 3막 성 안젤로 성의 복도 카바랏시가 갇혀 있는 감방 밖. 날이 밝기 전인 새벽 하늘에는 아직 별이 총총히 떠 있다. 맑은 새벽을 상징하는 전주곡이 있은 후 막이 열리면 성 밖으로 지나가는 목동의 노래가 인상적으로 들려온다. 성당의 종소리가 들려온다. 간수가 들어와 불을 켜고 주위를 돌아본다. 그 후 헌병이 카바랏시를 데리고 와 간수에게 서류와 함께 인계하고 나간다. 카바랏시는 간수에게 편지를 쓰게 해 달라고 부탁한다. 그는 지난날을 생각하며 흐느껴 운다. 이 때 토스카가 급히 들어와 카바랏시를 껴안으며 여권을 보인다. 그는 의외의 일에 놀라는데, 토스카는 스칼피아를 죽인 경위를 이야기한다. 카바랏시는 그녀의 손을 잡으며'아! 부드러운 손이여 인자하게 자비 베푸는 손이여'하며 노래한다. 토스카는 핸드백을 열면서 자신의 보석과 돈은 전부가지고 왔고 마차도 준비했으니 웃어 달라면서 공탄을 잰 총으로 카바랏시는 거짓 총살을 당해야 한다면서 그런 뒤에 병정들이 가 버리면 이제 자신들은 산 것이라고 말하며 미래를 말한다. 그러는 사이에 총을 가진 병사가 나타난다. 그들은 이별의 노래를 부르면서 토스카는 포대아래로 내려간다. 스폴렛타는 간수와 하사관을 데리고 나타나 필요사항을 지시한다. 잠시 후 성당의 종소리가 4시를 알리자 시간이 다 되었다고 말한다. 간수는 명부를 가지고 가 버리고 병사는 사관의 지시대로 사격한다. 이 때 쓰러지는 카바랏시. 그러나 그녀는 자비롭게 카바랏시를 바라보고 있다. 병사들은 임무를 마치고 나간다. 토스카는 그들이 다 가 버린 후 가까이 가서 그를 부르며 일으켜 세우려고 한다. 그러나 거짓이라고 생각했던 것이 정말 총살이었다. 토스카는 놀라면서 죽었다면서 노래하는데, 아래서는 웅성대는 말소리가 가까워 온다. 그것은 스칼피아의 시체를 발견하고 토스카를 잡으려고 오는 사람들의 발자국 소리이다. 이 때 달려드는 스폴렛타를 물리친 토스카는 성벽에서 광장으로 몸을 던진다. 그것을 보고 있던 샬로네와 병사들과 스폴렛타는 아연히 서있다. -오페라 극장-
20세기음악
역사적배경:
과학의 세기라고 불리는 19세기는 인류의 역사에 일대 변혁을 야기시켰다. 특히 그 후반에 이르러서는 인류의 생활과 직접 관련되는 수많은 발명과 고안이 이루어졌다. 교통과 전파 매체의 발달로 세계는 더욱 작게 만들어져서 오늘의 새로운 창조를 그 이튿날에는 이미 옛 것이 되게 함으로서, 인류사에 끊임없는 창조의 불길을 질렀던 것이다. 라디오나 텔레비전의 보급은 이것을 더 빠르게 진행시켰는데, 이와 같은 현상은 당연히 미(美)에 대한 인간의 감각에도 변화를 일으키게 하여 하나의 표준적인 심미관(審美觀)이 안주할 수 없게 만들었다. 또한 20세기에는 보지 못했던 다양한 음악들의 공존을 보여 준다. 또한 20세기 초반의 음악에 있어서 민속음악은 음악적인 민족주의를 표현하는 중요한 수단으로 존재하여 작곡가들이 자신의 작품에 민요와 춤곡을 인용하는 등 민속음악을 전통예술음악에 흡수시키는 방법을 계속해서 모색하였고 그리하여 음악에서의 민족적 차이가 여전히 유지되었다. 녹음장치의 발달로 민속음악을 손쉽고 정확하게 수집할 수 있게 되었고 이렇게 수집된 자료들은 종족음악 이론에 따라 객관적으로 분석되었다
음악적특징:
20세기 음악은 민속음악이 한 부류를 이루었는데 과학적으로 연구한 초기의 인물은 야나체크(Janacek)이었고, 뒤이어 헝가리의 코다이(Kodaly)와 바르토크(Bartok)가 중부 유럽의 민속음악을 광범위하고 학문적으로 연구하였다. 이들의 민속어법에 대한 연구로 말미암아 민요에 나타나는 선법, 5음음계, 색다른 음계들을 이용한 확대된 조성 등 새로운 음악양식이 발생하였다. 또한 20세기는 새 음악 (독. Neue Musik, 라. Musica nova, 동시대음악 Contemporary Music, 현대음악 Modern Music, 전위음악 Anant-grade)의 시대이다. 새로운 음악이란 말은 르네상스, 바로크, 고전주의, 낭만주의 등 시대가 바뀌면서 과거에도 사용되었다. 그러나 과거와의 단절이 이렇게 심했던 적은 없었는데, 이는 조성의 포기(쇤베르크)와 모든 전통적인 '음악' '작품'이라는 개념을 포기한 일(존케이지)이 일찍이 없었기 때문이다. 지나간 세월의 음악, 다른 민족들의 음악, 이런 모든 음악들의 자료가 음반과 녹음기의 발명으로 쉽게 들을 수 있어 모든 음악과 예술에 대한 지식이 확대되어 간 것이다. 거기에다 전제정치와 제 1,2차 세계대전에 의한 공포와 재난, 인류전멸의 위험, 경제 대공황, 빈부격차, 빈국과 부국의 대립, 동서대립에 의한 긴장상태, 말세론적 위기감, 미래세계에 대한 동경, 공상과학세계 등 급속하게 변화하는 과학문명과 사회의 갖가지 불안감 등으로 인하여 사람들의 가치 기준과 의식 상태가 변화하게 되고 또한 이와 함께 미(美)의 개념이 과거와는 다른 방향으로 달라지게 된 것이다.
현대음악의 특징인 다원주의와 불협화음은 통일된 세계상의 결핍, 인간과 자연의 조화상실, 인간의 내적 부조화를 증거하는 것이다. 가장 아름다운 예술 중의 하나가 음악이라는 과거의 미적 작고고 원칙은 근본적으로 부정된다. 이제 음악이 무조건적으로 '아름답다'든지 조화스러워야 할 필요가 없다. 그보다는 '진실'해야 하기 때문에 추(醜)할 수도 있다. '음악'과 '음악예술작품'의 개념에 대한 태도가 변한다. 20세기의 음악은 예전에 볼 수 없었던 새로운 음악적 현상들을 관철시켜, 이것이 옛 음악관과 함께 병존할 수 있는 길을 연다. 새로운 현상들에는 신고전주의와 같은 보편적 양식도 있고, 수많은 개성적 해결 방안의 것들도 있다. 다양성은 이해를 더욱 어렵게 만드는 경우도 있다. 악파, 지향성, 유행성, 모델은 점차 빠르게 변화하여 지속성을 띠지 못한다. 보편적인 구분, 즉 기악과 성악, 오페라, 교향곡, 소나타 등의 구분이 20세기에는 더욱 명확한 것이 못된다. 예외와 혼합, 그리고 전혀 새로운 형태의 음악이 도처에서 나타난다.
지금까지는 서양음악이 이국적 요소를 도입하는데 그쳤으나, 20세기는 이국의 문화와 음악으로부터 서양음악의 존립과 표현을 위한 내적 자극을 찾으려고 한다. 특히 인도를 비롯한 동양음악은 높은 정신성과 섬세한 음악 전통으로 매력적 자극제가 되고 있다. 작곡가들은 새로운 것을 연주 기술면에서도 찾았다. 이제까지의 악기를 새로운 방식으로 연주하는 것이다. 20세기의 기본사고에 따라 모든 것을 극단적으로 끌고 가서 해당 악기의 원래 목적을 크게 왜곡시키기도 한다. 세계 곳곳의 악기를 구입하거나 제작하여 사용하거나 새로운 악기를 발명하기도 하여 새로운 음향을 찾는다. 또한 후기 낭만의 1850년 이후 리스트와 바그너의 작품에서 조성(調性, Tonality)은 더욱 애매해져 무조적인 경향으로 점차 나아갔다. 1890년경을 낭만주의 음악의 해체로 보고 있는데 그 후 그 유산을 풍부하게 받으면서 또는 그 반동으로 새 양식이 대두하게 된다. 또한 이 시기에는 문학과 회화 등 자매예술과의 영향도 많이 나타난다.
인상주의(印象主義, Impressionism)
프랑스의 드뷔시가 창안한 인상주의 음악은 낭만주의에서 현대에 이르는 가장 중요한 전환점을 이룬 악파이다. 이 음악은 프랑스의 인상파의 회화와 상징문학에서 영향을 받아 일어났다. 인상파 회화에서는 빛과 그림자를 중시하는 야외 회화를 주장하였고, 형태를 그리는 선보다는 색채와 분위기적 인상을 중시하였다. 음악에 있어서도 이와 흡사하여 선율이나 형식의 명확성 대신에 감정을 강조하는 색채적 음악을 썼다. 자연계의 여러 가지 현상, 쉴 새 없이 변화하는 외계로부터의 자극에 대하여 예술가가 받은 순간적인 감응이며 응답이다. 그러므로 인상이란 외계의 묘사가 아니라 한번 마음에 자극된 내적인 인상을 결국 주관적으로 표현한다. 따라서 음악의 다이내믹한 감동보다는 음빛깔, 뉘앙스의 미묘한 변화를 표현한다. 기법상으로는 화음진행이 색채적이고, 연속적인 불협화음과 선법, 5음음계등 예외적인 음계 등을 사용하였다. 드뷔시는 1892년에 말라르메(S, Mallarme, 1842∼1898)의 상징시에 작곡한 《목신의 오후에서의 전주곡》으로 인상주의 수법을 확립시켰다. 그 외에도 관현악 작품《녹턴집, Nocturnes》《영상 Imagine》《바다 La Mer》가 인상주의의 대표적 작품들이고, 팔랴(M, Falla)의 《스페인 정원에서의 밤들》과 레스피기(O. Respighi)의 《로마의 소나무》등이 있다.
원시주의(Primitivism)
19세기말 극도의 문화적인 성숙에 따른 원시적 생명력에 대한 동경에서 온 것이다. 이국적인 제재를 음악에 도입하여 새로운 것을 표현하려 하였다. 원시음악은 당시 음악의 지나치게 세련된 연약한 음악에 대해서 원시 예술의 힘찬 원기를 되찾아 인간성을 회복하려는 음악이라 하겠다. 기법상으로는 일정한 리듬을 집요하게 반복하거나 홀수박자 또는 폴리리듬(Polyrhythm)등을 사용하였고 강하고 자극적인 색채 감각 등을 사용한다. 대표적인 작곡가는 스트라빈스키(I. Stravinsky)로서 그의 3대 발레인《불새》《페츠루시카》《봄의 제전》등의 작품이 대표작이다.
표현주의(Expressionism)
20세기 초반에 쇤베르크를 중심으로 주로 비엔나에서 활동한 작곡가들에 의해서 이루어진다. 외적인 형태의 표현으로서의 인상주의와는 달리 인간의 내면적인, 특히 잠재의식적인 일면을 표현한다. 20세기에 들어와서 정치정세는 세계대전으로 치닫고 있어 유럽사회는 불안에 차고 사람들의 마음은 어두웠으며 정신은 안정을 잃고 있었다. 쇤베르크 등의 작곡가들은 고착된 표피성, 이중윤리, 순응주의, 허구적 달콤함으로 특징이 지워진 시민사회를 거부하고 도전적인 진실, 깨어 있는 감수성, 불편함까지도 감수하는 철저함을 추구한다. 표현주의는 극단성, 대조성, 거의 광란에 가까운 격정을 많이 보여주는데 그후 이러한 극단적인 것은 새로운 음악의 본질이 되어 고전적 균형을 철저히 기피하게 된다. 표현주의 기법의 특징은 철저히 주관적이고, 멜로디는 무조(無調, Atonality)이고 화성은 극단적인 불협화음, 거칠게 연주되는 악기들의 음색대조 등을 들 수 있다. 표현주의 작품으로는 쇤베르크의 《달에 홀린 피에로》와 교향시곡《펠레아스와 멜리장드》등을 들 수 있다.
신고전주의(Neoclassicism)
신고전주의는 후기 낭만주의 음악의 주관적인 정서의 과잉, 방대한 관현악의 편성, 표제음악적인 인상주의와 표현주의 등에 대한 반동으로 나타났다. 따라서 신고전주의는 객관성과 형식성을 보이는 낭만주의 이전의 음악관념으로 복귀하려는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반드시 18세기 고전주의 양식의 복귀를 의미하지는 않는다. 신고전주의의 기본적으로 19세기 낭만주의 이전의 간결한 형식미를 추구하지만 예기치 않은 전조, 선율의 혼합, 그리고 강렬한 화성, 불협화음 등의 20세기 성향을 갖고 있다. 대표적인 작품들로서는 스트라빈스키(I. Stravinsky)의《풀치넬라》, 《피아노와 목관악기를 위한 협주곡》, 《시편 교향곡》, 힌데미트(P. Hindemith)의 《피아노, 첼로, 바이올린, 비올라를 위한 4개의 협주곡 op.36》, 그리고 프로고피에프(S. Prokofiev)의 오페라《3개의 오렌지에의 사랑》,《피아노 협주곡》,《고전 교향곡》등이 있다. 그리고 바르토크(B. Bartok)는 민족음악을 바탕으로 하는 음악 어법으로서 새로운 음악을 창조했다. 말하자면 그는 민족적 신고전주의 작곡가로 간주할 수 있다. 대표적 작품으로는 《미크로코스모스》,《현악기, 타악기와 첼레스타를 위한 음악》등이 있다.
12음주의(Dodacaphonism)
12음기법으로 작곡한 음악을 12음음악이라 하는데 이는 쇤베르크가 종래의 조성 음악에서 벗어나 철저한 무조성의 체계화를 시도하여 창조한 것이다. 이 기법은 한 옥타브 안에 있는 반음을 포함한 12개의 서로 다른 음을 1회식 일정한 순서에 따라 사용하는 것인데 먼저 세리(Serie)라고 하는 음렬(音列, Tonreihe)을 만들어 이 세리를 역행, 전위, 역행전위 등으로 진행시키는 것이다. 말하자면 지금까지의 전통음악의 음조직을 해체하고 12개의 음을 모두 평등한 가치로서 독립시켜 새로운 음의 표현을 시도한 것이다. 따라서 장대한 곡에 이 기법을 사용하는 것은 적합하지 않다고 볼 수 있다. 이 음악은 쇤베르크의 제자 베베른과 베르크에 의해서 계승되었고 제2차 대전 후에는 여러나라에 보급되어 더욱 새로운 발전을 보였다. 대표적인 곡으로는 쇤베르크의《관현악을 위한 변주곡, op.31》, 오페라《모세와 아론》, 베르크의《바이올린, 피아노, 13개의 관악기를 위한 실내합주곡》, 베베른 작품《칸타타 No.I, op.29)등이 있다.
신 즉물주의(Neue Suchlichkiet, 新卽物主義)
주관을 배제하고 객관을 철저히 하려는 것으로 표현주의에의 반동으로 생겨난 것이다. 표현주의가 강한 주관성에 기초하고 있는데 대하여, 신 즉물주의는 대상물의 본질에 대한 냉철한 관찰과 정확하나 묘사를 의도하는 예술운동으로서, 다분히 실용성이 인정되는 운동이었다. 특별한 경우와 목적을 위해 작곡되어 청중과 연주가의 거리감을 좁혀서 음악적인 이해를 보다 쉽게 하려는데 있다. 그래서 극단적인 전위적 기법보다는 단순한 자료를 사용한다. 힌데미트(P. Hindemith) 의 《플린의 음악제》, 《우리는 도시를 세운다》, 영국왕 조지5세가 서거하였을 때 작곡한 《장송곡》이 있다.
1945년 이후의 음악:
제2차세계대전이 1945년에 끝나자 지금까지 폐쇄되었던 국제적인 문화교류의 길은 다시 열리게 되었다. 그런 제대로 궤도에 올라 새로운 양식의 예술 활동이 나타나기는 1950년대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가능하였다. 제1차세계대전 직후에는 반낭만적인 사조가 강한데 비해 제2차세계대전 후에는 메시앙과 같이 르네상스와 주세기의 기교의 부활을 꾀하는 작곡 활동도 있었으나 전반적으로 볼 때는 전혀 새로운 영역으로 개척해 나가려는 경향으로 나아간다. 새로운 양식과 기법에 의한 1950년대부터의 새로운 음악을 좁은 의미에서 아방가르드(Avant-grade, )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구체음악(Musique Concrete, 具體音樂)
1948년에 프랑스의 파리 방송국에서 쉐퍼(Pierre Shaeffer, 1910∼1984)가 처음 시도한 이후 1950년 파리에서 최초의 음악회를 가졌던 새로운 표현 방법이다. 이것은 악보에 음을 적는 대신에 음악이나 말을 직접 녹음시켜서 연주한다. 문닫는 소리, 자동차 소음, 병따는 소리 등 현실에 구체적으로 존재하고 있는 음향을 녹음하여 테이프에 담고 편집한다. 녹음한 것들을 서로 겹치게 하거나 테이프의 회전 속도를 조절하는 등 여러 가지 방법으로 소리를 만들어 낸다. 이것을 미국에서는 테이프 레코더 음악(Tape Recorder Music)이라고 부르기도 하는데 이러한 구체음악은 착상부재가 너무 단순하다는 비판을 받은 후 전자음악으로 방향이 전환된다.
전자음악(Elektronische Music, 電子音樂)
최초의 전자음악 스튜디오는 1951년 쾰른의 북서 독일 방송국에 설치되었는데 그 책임자는 아이메르트(H. Eimert, 1897∼1972)였고, 이어 밀라노, 파리, 미국 등으로 확산되어 갔다. 전자 기술적으로 확성시키기만 하는 음악은 여기에 속하지 않고 전자로 만들어낸 음향이나 작품만을 전자음악이라 한다. 이 음악은 구체음악처런 전자음향 발전기를 통하여 만들어진 소리를 녹음 테이프에 집어넣고, 그 테이프를 편집하여 얻어진 소재로 구성된다. 발음기로 나온 순음을 겹치게 하고, 뛰게 하고, 메아리지게 동시적으로 울리게 하는 등의 여러 방법으로 새로운 음향을 만들어 낸다. 그리고 저자음악과 일반적 소음을 결합시키기도 하고 준비된 녹음 테이프와 연주자가 같이 연주하기도 한다. 이것은 1960년대의 신디사이저(Electronic Music Synthesizer)의 등장으로 무대 위에서 직접적으로 전자음악을 행하고, 후에 재결합하고, 혼합시키는 등의 방법으로 발전하여 새로운 전자 음악의 시대로 가고 있다. 전자음악은 아이메르트와 베이어(R. Beyer)등이 시작했으나 전자음악의 권위자는 스토크하우젠(Karlheinz Stockhausen, 1928∼)이라 하겠다. 그의 작품으로는 《전자음악》, 《피아노와 타악기를 위한 콘카테(Konkate)》, 《소년의 노래》등이 있다.
우연성의 음악(Music of Chance Operation, 偶然性)
불정확성 음악 등으로 불리기도 하는데 전통적 음악 개념으로는 음악이라고 보기 어려운 20세기의 가장 급진적인 아방가르드이다. 이 음악은 일정한 법칙이나 제한이 없다. 작곡가는 기존하는 음표를 사용하기도 하지만 일련의 기호 같은 음표를 대신하기도 한다. 연주자는 작곡자의 의도를 자유롭게 이해하고 즉흥적으로 연주한다. 물론 연주는 그때그때마다 달라지고 작품은 녹음을 해야만 보존될 수 있다. 미국의 존 케이지(John Cage, 1912∼)와 스토크하우젠은 우연성 음악을 많이 실행하였다. 존 케이지의 《상상적인 풍경화, op.4)는 12개의 라디오를 각각 다른 주파수에 맞춰 놓고 두 사람의 연주자가 나와 주파수와 음량을 조절한다. 1954년에 발표한 그의 작품 피아노곡《4분 33초》에서는 피아니스트가 악기 앞에 앉은 채로 아무 연주도 하지 않고 시간이 되기를 기다리다가 시간이 지나면 피아노 뚜껑을 닫고 퇴장한다. 말하자면 그 시간이 들려오는 잡음이라든가 듣고 있는 자신의 숨소리, 고동소리 그 모두가 다 음악이라는 것이다. 스토크하우젠의 작품 《피아노곡 11번》은 19개의 부분으로 되어 있는데 6가지의 다른 빠르기와 강약, 여러 가지 스타카토와 레가토 등으로 순서 없이 연주한다.
타악기를 위한 작품《싸이클》에서는 악보가 원형으로 되어 있기 때문에 연주자는 어느 방향에서 시작해도 결국 시작 지점으로 오게 된다. 이와 같은 경향은 12음기법 음악과 같이 너무나 치밀한 작곡법에 대한 반발과 세계대전 이후 계속된 세계 정세의 불안과 긴장의 연속 등에 기인하여 나타난 현상이라고 할 수 있다. 이제 관현악의 어떤 파트에 대하여 대략 지시만 해주고 연주자가 자유롭게 연주할 수 있는 작곡법은 일반화되어 가고 있다고 볼 수 있다. 1970년대에 들어와서는 재료, 테크닉, 합리주의가 매력을 상실하고 예술과 음악에 새로운 것에 대한 추진력이 쇠퇴한다. 50∼60년대의 고립적 성향 대신에 청중과 공동체에의 접근이 시도된다. 주관적 감정은 나르시즘적 성향까지 띠는 일이 많고, 사회와도 긍정적으로 연결된다. 교향곡, 현악4중주, 오페라 등과 같은 옛 장르들과 기존 장르들의 복합형태가 선호된다. 이 음악들은 50∼60년대의 혼란하고 다양성을 보이던 아방가르드 음악처럼 많은 말로 설명을 하지 않아도 이해가 가능하다. 이러한 음악의 모델은 고전 음악이 아니고 낭만주의 음악에 가깝다. 하지만 다양한 개성은 그대로 존속된다. 항상 좋은 질의 음악은 오늘날도 어떤 프로그램이나 악파를 통해 나오지 않고 작곡가 개인에 의해 만들어지는 것이다.
국민악파
역사적배경:19세기 후반이 되면서 동유럽 여러 나라와 북유럽 제국에서는 프랑스 혁명에 의해 조성된 자유,평등의 전신과 민족 해방을 목표로 하는 국민주의 운동이 나타나게 되었는데, 이러한 경향은 음악에도 나타나 국민악파를 형성하게 되었다.19세기 말경 러시아, 보헤미아 및 북유럽 등에서 나타난 민족주의 음악인데 음악의 기법상으로는 낭만파음악의 연장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러나 거기에 표현되어 있는 민족적인 색채는 20세기에 이르러서는 독자적인 기법에 의해서 한층 더 명확한 민족주의 음악으로서 나타나게 되었다. 이는 당시 독일,프랑스,이탈리아를 중심으로 절정을 이루고 있던 낭만파 음악에 대항하여 , 러시아,헝가리,보헤미아 등지의 작곡가들이 중심이 된 '음악 재창조 운동'의 계기가 되었다.
음악적특징:당시 예술가들은 평범한 사람들의 삶의 모습을 작품 소재의 소중한 근원이라 생각하였다. 작곡가들은 자기 나라의 민요나 전승 음악의 선율,리듬 등을 재편성한 작품과 자기 나라의 신화,전설,역사,자연,풍속 등을 소재로 하여 극음악을 작곡하였다.국민주의 음악이 맨 처음 활발하게 일어난 나라는 러시아로서 글린카(M.I. Glinka, 1804∼1857)로 러시아 최초의 오페라《황제에게 바친 목숨》,<루드밀라>을 발표한 이후에 이른바 '5인조'가 국민주의 음악을 적극적으로 추진했다.
5인조의 리더인 발라키레프(M.A. Balakirew, 1837∼1887)은 오페라 《이고르 공》등을 작곡했고, 오페라《보리스 고두노프》와 모음곡《전람회의 그림》등을 작곡한 무소르그스키(M.P. Mussorgsky, 1839∼1881), 관현악법의 대가로서 《세헤라자데》등을 작곡한 림스키 코르사코프, 그리고 큐이(C, Cui, 1835∼1918)등이 있다. 보헤미아의 첫 번째 국민주의 작곡가는 스메타나(B, Smetana, 1824∼1884)이다. 그는 리스트의 영향을 받아《몰다우》등 6개의 교향시 연작인 《나의 조국》, 오페레타《팔려간 신부》등으로 보헤미아의 국민 음악을 확립하였고, 드보르작(A. Dvorak, 1841∼1904)은 교향곡《신세계》등 음악적 비중이 높은 곡들을 작곡하여 민족음악의 금자탑을 쌓았다. 그 외에 노르웨이의 그리그(E, Grieg, 1843∼1907), 핀란드의 시벨리우스(J. Sibelius, 1865∼1958), 스페인의 알베니츠(I. Albeniz, 1860∼1909), 팔랴(M.D Falla, 1876∼1946)등이 있다.이러한 국민 악파의 음악은 20세기에 들어와서 빛을 잃었지만, 오늘날 민족적인 소재를 현대 음악에 사용하려는 경향을 낳게 하는 원천이 되었다.
낭만 음악
역사적배경:낭만주의(Romanticism)는 일반적으로 19세기의 음악을 지배하는 기본적 이념으로 알려져 있지만 사실, 광의의 의미에서 낭만 예술이란 어떠한 시기의 현상이 아니고 여러 형태로 여러 시기에 나타나는 것이다, 즉 아르스 노바는 아르스 안티카와 비교하자면 낭만적인 것으로 여겨지고, 르네상스와 비교하자면 바로크가, 또한 19세기는 18세기의 고전주의와 비교하자면 낭만주의적인 것이다. 이렇게 낭만예술은 현실의 시간과 기회를 초월하여 영원한 것을 잡으려 하고 세계의 폭을 넓히고 우주를 통해서 밖으로 나아가려고 한다. 낭만주의는 19세기의 음악을 지배한 기본적인 지도 이념으로써, 특히 문예분야에서 강한 영향을 받았다. 그 중요한 본질은 새로운 것을 희구하는 욕구, 개성의 존중, 자유에의 태도, 또한 새로운 시대 정신에의 동경 등이다. 따라서 낭만주의 음악은 고전주의 음악에서 존중하던 보편적인 형식과 이상화된 내용을 버리고 신기한 것을 쫓고 통제적인 울을 벗어나 개성적인 색조를 강화한 속박받지 않는 자유로운 태도로 자기의 음악을 가지고 노래하려는 정신경향, 또한 시나 회화 등 음악 외적인 분야로부터의 새로운 자극을 희구하는 경향을 갖게 되었다.18세기 후반과 19세기 초반은 프랑스대혁명에서 두드러지게 나타났듯이 자유민주주의 사상이 대두된 시기였다. 프랑스대혁명은 일반 시민계급이 특권계급에 대한 반발이 직접적인 원동력이 되었고, 그것은 18세기의 유럽을 지배하고 있던 이른바 계몽주의 사상과 그 문예사조등에 의해서 양성된 것이기도 했다. 그러나 당시 계몽주의는 이성에 지나치게 편중하고 전통을 경시하는 경향이 있었는데, 19세기에 들어오자 그것에 대한 반동으로 냉철한 이성보다는 인간 본연의 감정면을 중시하는 경향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그리하여 합리적인 것보다는 공상적, 목가적인 세계를 동경하게 되고 무엇보다도 먼저 개개인의 인간성을 존중하는 풍조가 생겨났다. 이러한 경향이 바로 낭만주의인데 예술가들도 자유에 대한 이상과 개인주의 사상에 심취하기에 이르렀고, 음악에 있어서도 역시 낭만적 요소가 깃들기 시작하였다. 고전주의 작곡가들은 형식성을 중심으로 하여 객관적인 아름다운을 추구한데 대하여 낭만주의 작곡가들은 무엇보다도 자기표출이라는 주관성을 중심으로 하여, 자기의 감정을 유일한 실마리로 삼고 있었다. 또한 산업혁명의 결과 부유한 자본주위 중산층이 형성되어 청중의 범위가 크게 확산되었고, 이러한 부유 중류계층들은 곧 작곡가들의 후원자가 되었던 것이다. 이 시대의 작곡가들은 사회적으로나 경제적으로 독립해서 일반청중을 대상으로 곡을 써 나갔다. 청중이 있는 곳에서는 어디서나 연주를 하였고 자신이 느끼는 감정은 여러 형태로 묘사되었다. 그래서 그들은 폭넓게 독서했고 음악 이외의 다른 예술에도 깊은 관심을 가졌다. 그들이 다루는 소재는 다양했다. 그리이스 신화에서부터 전설과 동화, 자연의 경관, 연인의 사랑 등 모든 것이 소재가 되었다. 이러한 소재는 다양하고 풍부하게 음악으로 표현되어 새로운 형식의 음악이 만들어지게 되었다.
음악적 특징: 음악의 기법에 있어서도 새로운 개혁을 갖게 되어 고전음악시대의 최고의 이상형식이던 소나타를 대담하게 변형 또는 포기하고 그 대신 자유롭고 유동적인 형식을 사용하게 되었다. 특히 단일악장의 환상적인 소품 형식을 좋아하게 되었다. 낭만주의 시대 선율은 고전음악 시대처럼 마디 수가 배수로 구성되는 규칙적인 것이 아니라 불규칙적인 것이 많아지고 당김 음이라든가 잇단음표 등을 자주 사용해서 다채로운 변화와 표현의 폭을 넓히고 그 음역도 확 대하고 때로는 비성가적인 음정도 서슴치 않고 사용하게 되었다.이와 동시에 리듬도 자유롭게 되어 복잡한 겹리듬을 자주 쓰게 되었고, 화성도 아직 3화음을 원칙으로 하나 보다 자유롭고 변화를 가져와 불협화음을 자주 사용하고 대담한 조바꿈을 하게 되었다. 또한, 관현악 편성도 다양하고 확대되어 새로운 음색을 모색하게 되었고, 편성도 대대적인 편성으로 압도적인 음향을 요구하게 되었다.19세기의 낭만주의 음악은 고전주의 음악 이상의 질서, 균형, 조절등에 대립하여 자유, 열정, 그리고 얻어질 수 없는 것에 대한 끊임없는 추구를 즐겨한다. 그리고 고전적인 분명성은 의도적인 애매성과 대치되고 암시에 의한 언급,은유,혹은 상징에 의해 대치되는 것이다. 또한 시나 회화 등 음악 외적인 분야로부터의 새로운 자극을 희구하는 경향을 갖게 되었다.
초기낭만파:
19세기에 이르자 유럽에는 근대 국가들이 세워지면서 민주주의가 발달하고, 산업 혁명이 일어났다. 또한 사회주의와 자본주의의 대립이 시작되었고, 사람들은 자유로운 사상과 감정에 눈 뜨게 되었다.당시 사람들은 보편적인 것과 합리적인 것, 이지와 사고보다는 상상에 의한 것, 개인의 자유로운 감정과 사상 등에 관심을 가졌고, 이러한 경향은 음악에도 크게 영향을 주었다.가곡에서는 슈베르트에 의해 시와 음악이 밀접하게 결부된 '리트(lied)라는 새로운 표현 형식이 확립되었고, 고전적 형식에 벗어나 즉흥곡·랩소디·무언가 등의 자유로운 형식에 의한 기악 소곡이 작곡되었다.또한, 음악이 문학과 회화 등의 다른 예술과 결합하게 됨으로써, 이를 소재로 한 서정적이고 환상적이며, 사실적인 교향시가 많이 작곡되는 등 표제 음악이 발전하였다.초기 낭만파음악은 베토벤의 중기에 벌써 시작되고 있었다. 그리하여 베버(Carl Maria von Weber, 1718∼1826)가 1821년에 오페라 《사탄의 마수》를 발표하고 모차르트, 베토벤에세 바그너에 이르는 교량적 역할을 하였는데, 그는 그의 작품을 통하여 악기에 의한 상징법, 혁신적인 악기사용, 독일의 전설을 소재로 사용하는 등 독일 낭만주의 오페라의 확고한 지반을 구축하였다. 또한 베버는 오페라 이외의 작품에서도 강한 극적 효과와 다양한 색채적 효과를 거두어 낭만적인 경향을 추구하였다. 예술가곡과 즉흥곡으로써 시정이 흐르는 낭만 정신을 이끌어 들인 슈베르트(Franz Schubert, 1797∼1828)는 600여곡의 가곡 작품에서 그의 끊임없이 샘솟는 선율을 서정시에 붙여, 다양하고 오묘한 화성을 창출하는 피아노 반주와 함께 낭만적인 정감 속에 융합하였다. 교향곡, 실내악곡 그리고 피아노곡 등 그의 모든 작품들은 낭만적 풍취가 넘치는 낭만정신으로 일관되어 있다
중기낭만파:
낭만의 꽃이 피기 시작한 시기로서 서정적인 작은 형식을 자유롭게 다루며, 자매예술의 영향을 받아 다양한 표현법으로 주관적인 사고로서 자유롭게 표현하였다. 멘델스존(Felix Jakob Ludwing Mendelssohn-Batholdy, 1809∼1847)은 시의 세계를 피아노에 도입시킨 '무언가의 창시자'로서, 그의 작품은 짧은 생애였음에도 불구하고 많은 작품을 남겼는데, 그 대부분은 고전적인 전통에 뿌리박고 있으나 《한 여름밤의꿈》,서곡《핑갈의동굴》,교향곡《스코틀랜드》《이탈리아》등의 표제음악에서 볼 수 있는 회화성은 분명히 낭만적인 꿈과 시(詩)가 깃들어 있음을 느낀다. 환상적이고 서정적인 기악곡 등으로 독일 낭만주의를 절정에 끌어올린 슈만(Rovert Schumann,1810∼1856)은 그의 피아노 음악에서 서정시와 관계되는 서정성을 밑바탕으로 하여 피아노 페달의 효과적인 사용, 대담한 반음계적 화성, 음형의 다양한 변화 등의 개성적인 표현이 뛰어났다. 그의 가곡은 문학과 음악이 가장 접근된 것으로서 아름다운 선율과 다양한 피아노 반주로 시의 이미지에 의한 내적 융합의 성과를 나타내고 있다. 피아노의 시인 쇼팽(Frederic Chopin, 1810∼1849)은 피아노의 온갖 기능을 최대한으로 발휘하였는데 그의 작품은 피아노곡들이 대부분이며, 모두 아름답고 향기가 높다.대개가 즉흥적 성격을 지니고 있으며 꾸밈음과 템포의 변화, 독특한 장식음의 전개 등을 특색으로 하여 시적으로 표현된다. 이 시기에 로시니(Gioacchino Antonio Rossini, 1792∼ 1868), 도니체티(Guetano, Donizetti, 1797∼18480, 벨리니(Vincenzo Bellini, 1801∼1868)로 이어지는 이탈리아의 오페라와 프랑스에서도 오페라가 성행했는데, 낭만주의 사조에 의한 낭만적인 정서가 그들의 작품에 흐르고 있음을 알 수가 있다.
후기낭만파:
후기 낭만주의 음악의 범위는 넓게는 시기적으로 낭만주의 전반부에 활동한 슈베르트나 베버 이후의 음악에 국한시킬 수도 있으나, 일반적으로 후기 낭만주의 음악은 리스트나 바그너의 급진적 음악 양식이 도래한 시기를 기점으로, 좁은 의미에서는 바그너의 음악극이 출현한 1860년대 이후의 독일 음악을 지칭한다.
19세기의 마지막 25년간 유럽 음악가들에게 미친 바그너의 영향은 지대한 것이었다. 이 시기의 말기 낭만주의 음악 어법은 보불전쟁 이후 통일제국을 이룬 독일을 중심으로 새로운 음악언어로 전환되면서 바그너를 추종한 부르크너, 볼프, 말러, 슈트라우스에 의해서 후기 낭만주의 음악을 주도하게 되었다. 또한 낭만파 음악은 새로운 경향이 나타나면서 더욱 다채로워져 전성기를 이루었다. 이 시대의 전반적인 특징은 대규모의 악곡이 많이 작곡되었고, 가극·화성법·관현악법 등이 급속하게 발달하는 한편, 자유로운 표현에 의한 악곡이 작곡되었다.이탈리아의 베르디(1813∼1901)와 푸치니(1858∼1924), 프랑스의 비제(1838∼1875)등은 사실주의와 민족주의적 경향이 강한 작품을 작곡하여 낭만파 오페라는 절정을 이루었고, 독일의 바그너 (1813∼ 1883) 에 의해 음악에 극·미술 등이 종합된 악극이 창시되었다.또 말러(1860∼1911)·브루크너(1824∼1896)·R .슈트라우스(18641∼1949) 등에 의해 교향시와 교향곡은 더욱 새로운 경지로 발달하였다.브람스(1833∼1897)는 지나친 표제적 경향을 피하여 고전적 형식을 계승함으로써 신고전파의 음악을 낳았으며, 생상스(1835∼1921)는 프랑스의 독자적인 음악 문화를 쌓으려고 노력하였다.
한편, 차이코프스키는 국민악파 음악의 특징인 민족적인 색채가 짙은 음악을 작곡하면서도 보편적이고 세계성을 띤 음악을 작곡하여, 풍부하고 다양한 색채의 음향을 창출하였다.이 시기 음악에서는 보다 풍부한 음향과 색채가 추구되어, 각 악기의 음색을 살린 다양한 악기 편성이 시도되었고, 반음계 진행과 안어울림 화음이 많이 쓰이는 등의 새로운 작곡 기법이 사용되었다. 즉 무조적 경향이 나타나기 시작하였다.그리고 금관 악기가 현대식으로 개량되어 플루트·트럼펫·코넷· 등의 악기에 밸브가 부착되었으며, 연주 기술은 고도의 기교를 요하게 되었다. 후기 낭만파 또는 신 낭만파라고도 하는데 이 시기는 낭만주의 음악이 결실을 맺는 시대이며 또는 새로운 음악으로 변화되는 새로운 기운이 있는 시대라 하겠다.
이 시대에는 표제음악의 발달과 함께 교향시, 악극(Music Drama)이 창시되었고, 관현악이 발달하였으며 오페라의 전성기이기도 하다. EH한 말기에는 무조(撫棗, Atona)적 경향이 나타나기 시작하였다. 이 시대의 최초의 작곡자는 이탈리아의 파가니니(Niccolo Paganini, 1782∼1840)이다. 파가니니는 바이올린의 명수로서, 바이올린 연주에 있어서 새로운 기교를 연주하여 많은 사람들에게 놀라움을 주었으며 그의 신기에 가까운다채로운 표현을 당시의 많은 작곡가들에게 영향을 주었다. 프랑스의 베를리오즈(Hector Berlioz, 1803∼1869)는 《환상교향곡》을 발표하여 관현악에 새로운 효과를 시도하여 표제음악을 완성하였다. 그는 그의 작품에서 고정관념(Idee Fixe)이란 것을 창안하여 음악의 줄거리 진행에 있어서 특정한 모티브로서 주인공을 표현하였다. 그리고 베를리오즈는 관현악의 규모를 확대시켰고 악기의 그 표현 능력을 극도로 발휘시켰다. 또 이와 같은 새로움을 헝가리의 대 피아니스트이며 작곡가인 리스트(Franz Liszt, 1811∼1886)에 의해 교향시라는 새로운 형식을 만들어 냈다. 리스트는 12곡의 교향시를 작곡하였는데 그 어떤 형식에도 구애를 받지 않고 또 악장을 나누지도 않는 음악으로 시적인 묘사를 자유롭게 구사하는 표제음악을 만들어 낸 것이다. 당시 오페라도 크게 성행하였는데 이탈리아의 가극왕 베르디(Giusepe Verdi, 1813∼1901)는 민족적이면서도 개성적인 오페라를 작곡하여 대단한 인기를 누렸는데, 그는 초기의 작품에서는 아름다운 선율을 중시하여 작곡하였으나 당시 낭만주의 문예의 영향을 받은 중기 이후의 작품에서는 극적 진실을 추구하여 극과 음악이 함께 중요시되었고 관현악법도 충실한 명락들을 이루면서 만들어 냈다. 그의 작품은《리골레토 Rigoletto》《춘희 La Traviata》《아이다 Aida》등의 많은 걸작들이 있다. 베르디 이후에 이탈리아 작곡가는 마스카니(Pietro Mascagni, 1865∼1945)와 레온카발로(Ruggiero Leoncavallo, 1858∼1919)인데 이들은 신낭만주의 수법을 써서 현실생활의 잔인한 사건을 묘사적으로 다루는 베리스모(Verismo), 즉 사실주의 오페라를 시도했다. 이것은 푸치니(Giacomo Puccini, 1858∼1924)의 《토스카 Tosca》에 이어진다. 그의 작품들은 이탈리아 오페라의 전통인 풍부한 서정적 선율에 탁월한 관현악법으로 《라보엠 La Boheme》《나비부인 Mudame Butterfly》등의 명작을 작곡하였다. 프랑스에서는 바그너의 영향을 받은 비제(George Alexandre Leopold Bizert, 1838∼1875)가 오페라《카르멘 Carmen》을 발표하였다. 독일에서는 바그너(Richard Wagner, 1813∼1883)라는 걸출한 인물이 나타나 악극(樂劇, Music Drama)을 창시하였다. 기존의 전통적인 오페라의 불합리한 점을 과감히 정리하고 새로운 형식의 음악극을 만들어낸 그는 유도동기(誘導動機, Leit motiv)를 사용하여 극중 인물이나, 특정 장면을 나타냈고, 극의 단절을 방지하기 위하여 '무한선율(無限旋律, Unendliche Melodie)'를 창안하였다. 이런 수법의 악극으로 《크리스탄과 이졸데》가 최고의 역작으로 꼽히는데 반음계의 빈번한 사용과 불협화음의 사용 등으로 재래의 기능 화성법의 한계를 넘어 조성의 붕괴현상이 일어나게 된다. 바그너파인 오스트리아의 브루크너(Anon Bruckner, 1824∼1896)는 오르간의 명수이면서 9개의 교향곡을 작곡하는 등의 창작활동으로 조용하고 종교적 달관을 느끼게하는 음악경지를 이루었고 볼프(Hugo Wolf, 1860∼1903)는 주로 가곡을통하여 그의 천재성을 발휘하였는데 슈베르트 이후의 독일 가곡의 문학적, 예술적 발전을 정상으로까지 끌어 올렸다. 이와같은 진보적인 신낭만주의는 바그너를 중심으로 하여 유럽 음악계 전체의 지배적인 흐름이 되었는데, 그 반면에 고전파 음악정신을 바탕으로 해서 작곡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그 대표적인 인물이 독일의 브람스(Johannes Brahms, 1833∼1897)인데 그의 화성이나 선율은 중기 낭만파의 모습을 띠고 있으나 그는 바흐와 베토벤의 정신을 이어받아 독일 고전의 정수를 순수하게 지켰다. 4개의 교향곡 이외에 관현악곡, 피아노곡 등 많은 작품을 남겼는데, 그는 '신고전악파'라 불리울 만큼 절대음악에 온갖 힘을 경주한 작곡가였다. 그리고 그밖의 후기 낭만파 음악의 작곡가는 프랑스의 프랑크(C. Auguste, Frank, 1822∼1890)와 생상스(C, Camile Saint-Saens, 1835∼1921), 러시아적인 성격으로 독일 낭만파의 전통을 이어받은 교향곡 《비창》의 차이코프스키(Pyotr Il'yich Tchaikovsky, 1840∼1893)등이 있고, 가곡과 교향곡 분야에 두루 뛰어나고 특히 거대한 규모의 작품을 쓴 오스트리아의 말러(Gustav Mahler, 1860∼1911)와 교향시에 표제적인 내용과 그의 독특한 스타일에 근대적인 작곡 수법을 가미하였고 200역곡의 예술가곡을 작곡하여 독일 리트의 전통을 이어받은 R슈트라우스(Richad Respighi, 1879∼1936)등이 있다. 그리고 이탈리아에는 오페라 이외에 기악곡을 중시하여 능란한 관현악법으로 색채감 있게 창작 활동을 한 레스피기(Ottorio Respighi, 1879∼1936)등이 있다. 한편, 이 시대에 파리와 빈, 그리고 런던을 중심으로 사람의 마음을 즐겁게 해주는 경음악이 전개되고 있었는데, 이것을 오페레타(Operetta)의 세계였다. 파리에서는 오페라부파, 빈에서는 오페레타, 런던에서는 라이트 오페라(Light Opera)등으로 명칭이 달랐지만, 그 내용은 모두 친숙한 제재와 쉽게 이해할 수 있는 음악을 특색으로 삼고 있다. 파리에서는《천국과 지옥》을 작곡한 오펜바흐(Jacques Offenbach, 1819∼1880), 빈에서는 오페레타와 많은 왈츠의 명곡을 남긴 슈트라우스(Johann Strauss, 1804∼1849, 1825∼1899) 부자, 서곡《경기병》으로 유명한 주페(F, van Suppe, 1819∼1895), 런던에서는 설리번(A.S. Sullivan, 1842∼1900)등이 유명하다
고전 음악
역사적배경:1750년 ~ 1810년
1750∼1825년까지를 '고전주의 시대'라 한다. 이 시대는 사회적으로 신인문주의가 제창되었고, 사상적으로는 관념론과 이상주의가 대두되었으며, 시민 계급이 해방되는 시기였다. 이러한 사회적 배경 위에 모든 예술은 단순 명료하고 간결하며, 인간의 실체와 정신의 조화를 이루는 것을 이상으로 하였다. 바로크 음악 시대의 최후의 완성자인 바흐와 헨델이 복음악으로 바로크 양식의 황금시대를 이루었으나, 그들의 만년에는 한편에서 이에 새로운 이상을 추구하는 운동이 일고 있었다. 대 중들은 복잡한 다성부 음악에 싫증을 느끼게 되었고, 따라서 간결하고 선명한 음악을 희구하게 되었다. 이러한 취향에 따라 음악은 간결하고 솔직한 선율을 택하게 되었고, 이것을 화성 적인 반주로 뒷받침하는 단순한 화성적인 단음악 즉 호모포니(Homophony)음악으로 전환하게 되었다.
이러한 새로운 음악은 선율이 그 진행이나 구조에서 기능적인 화성에 뿌리를 박게 되었고, 그 구조에서도 바로크 선율과 같이 자유분방하게 구성되는 것이 아니라 이를테면 4마디로 악 구를 이루어 반마침을 하고 8마디로 완전마침을 해서 독립된 악절을 이룬다는 성격적이고 규칙적, 내지는 균형적인 구성방법을 하게 되었다. 이에 대한 반주도 대위법적 방법이 아니라 화성적인 것 또는 화음적인 것으로 펼친 화음과 같은 것을 많이 사용하게 되었다.
음악적특징:음악도 그러한 영향을 받아 여러 면에서 변화를 일으켰다. 대위법 중심의 복잡한 다성음악에서, 간결하고 명쾌한 화성 음악으로 변화하였고, 소나타 형식이 생겨나 교향곡·협주곡·독주 소나타·현악중주곡 등의 새로운 기악 양식이 사용되었다.그리고, 균형진 규칙적인 형식미를 추구하게 되었는데 그 형식도 간결하고 솔직한 것을 좋아 하게 되었고 모든 형식이 어떤 일정한 논리성을 갖게 되었다. 이러한 양식을 클래식(classic) 즉 고전 음악이라고 이른다. 클래식이라는 어휘는 원래 "고전적" 이라는 뜻보다는 "모범적" 내지는 "표준적" 이라는 뜻에 가깝다. 그러나 오늘날 클래식이라는 말은 역사적인 또는 시대 적인 범주로 고전파음악을 통칭하는 말로 쓰인다.
고전파 음악은 바하가 1750년에 세상을 떠난 무렵부터 더욱 융성을 보아 19세기의 30년경 까지 지배적인 세력을 갖고 음악의 모든 분야에 걸쳐 침투해서 실현을 보았다. 따라서 작곡 가들의 음악활동면에서 볼 때 고전파 음악은 18세기 중엽부터 19세기 초에 걸친 약 80년간에 해당된다고 보아야 한다. 이 시대의 커다란 업적이라고 한다면 화성음악의 확립, 소나타 형식의 확립과 발전, 기악의 확립과 발전 즉 교향곡, 근대적 협주곡, 현악 4중주, 피아노 3중주 등의 기악양식과 연주양식의 확립등이다.
고전파음악이란 말은 본래 당시 작곡가들이 붙인 말이 아니라 후세에 이르러 낭만주의 음악에 대해 그 이전의 것을 지칭하기 위해서 사용한 말이다. 바로크시대의 사회적, 국가적 체제가 어디까지나 절대주의적 왕권 아래 있었으나, 점차 신흥 시민 계급이 대두하면서 이성에 의한 합리적인 사회문화의 건설을 희망하는 계몽주의 철학의 자유주의 물결이 일어나게 되었다. 예술분야도 과거 종교나 특정인만이 향유할 수 있는 범주에서 벗어나 보다 넓게 수용되게 되었다. 그것은 인간을 중시하는 고대 그리이스예술에 대한 동경으로 이어져서 객관성을 바탕으로 하는 형식과 균형의 조화를 추구하는 음악을 지향하게되었다.
결과적으로 대위법적인 음악보다는 단순 명쾌한 선율을 지닌 화성음악을 선호하였고 개성적인 감각의 성악음악보다는 기악음악이 인기가 있게 되었다. 작곡가들은 이제 누구나 이해할 수 있는 객관적인 음악기법을 창안하는 노력이 필요하였고 그러한 노력의 결과는 소나타형식(Sonata Form)이라는 형식적인 틀을 완성하게 되었다. 이처럼 이 시대의 형식의 범주안에서 단순명료하고 질서와 절제를 중시하는 인간적인 음악이 주가 되므로서 종교음악 분야는 음악사상 처음으로 침체국면을 맞게 된다.
(1) 전기 고전파 전기 고전파는 바로크말기의 1720년경에서부터 고전 초엽의 1770년대의 음악을 가르킨다. 이 시기에는 당대한 바로크양식에서 벗어나 경쾌하고 단순 명료한, 그러면서도 가벼운 장식적 요소가 가미된 로코코(Rococo)양식이 나타난다. 감상적인 멜로디에 화성기법이 사용되었으며 독이 남부의 만하임악파에서는 소나타 형식의 발전과 함께 4악장제의 교향곡의 정형을 완성하였다. 작곡가로는 만하임악파(Demenico Scarlatti, 1685∼1757), 소나타형식을 창시한 바흐의 아들 임마누엘 바흐(Cari, Philipp Emanuel Bach, 1714∼1788) 등이 있다.
(2) 오페라의 개혁 가극은 시와 극과 음악이 융합하려는 경향이 강하게 나타나면서 글루크의 '오르페오와 에우리디체'가 작곡되어, 극음악이 새로운 모습으로 발전하는 계기가 마련되었다. 18세기 전반을 주도했던 나폴리 오페라는 극적 사실을 경시하고 성악적 기교만을 강조하여 청중을 자극할 수 있는 감각 위주의 음악표현에만 치중하였다. 이러한 가수의 화려한 기교위주의 오페라는 극의 진행을 방해하고 심지어는 막의 진행이 중단되는 사례도 종종 있었다. 그래서 욤멜리(N, Jommilli)와 트라에타(T. Traetta)와 같은 작곡가들에게 개혁의 의지를 일으켜서 새로운 시도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글루카(Christoph Willibald Gluck, 1714∼17870)는 1762년 빈에서 새로운 구성의 오페라 《오르페오와 에우리디체》를 발표하여 오페라 개혁의 선봉에 나섰다. 이어서 많은 혁신적인 오페라를 발표하여 이러한 개혁정신은 얼마간 다른 작곡가들에게도 지속되었으나 시간이 흐름에 따라 점차 퇴색하여 새로운 형태의 오페라로 정착되지는 못하였다. 그러나 오페라에 있어서 극과 음악이 모두 중요시되어야 한다는 글루크의 이상은 19세기에야 비로소 베버(C.M Weber), 바그너(W. R. Wagner) 등에 의해서 실현하게 된다.
(3)빈 고전파(Viennese Classics) 이 시대의 대표적인 음악가는 하이든, 모차르트, 베토벤을 들 수 있다. 하이든은 소나타 형식과 악기 편성법을 확립하였고, 모차르트는 소나타 형식을 더욱 발전시키는 한편, 다양한 종류의 음악을 작곡하였으며, 베토벤은 고전파 음악을 최고도로 발전시키고 낭만파 음악에의 길을 열었다.고전파음악은 18세기 중엽에서 19세기초에 걸쳐서 하이든과 모차르트에 의해서 완성되고, 이어서 베토벤에 의해서 한층 더 충실하게 되고, 또 베토벤에 의해 또 다른 방향으로 인도되었다. 이 대가들은 주로 빈에서 살았는데 그래서 이 완성기의 고전파음악을 빈 고전파음악이라고 한다. 빈 고전파의 첫 번째 대가인 하이든(Joseph Haydn, 1732∼1809)은 화성적 단성율 음악에 크게 성공했고 2개의 대립되는 테마를 제시하여 그것을 발전시키고 다시 테마를 반복 재현하는 소나타형식을 완성시켰다. 또한 교향곡에 있어서 제 3악장에 미뉴에트를 고정 배치하여 제 1악장 소나타형식, 제 2악장 가요형식, 제 3악장 미뉴에트, 제 4악장 론도형식 또는 소나타 형식의 근대적 교향곡의 형태를 확립하였다. 그의 작품에는 104개의 교향곡, 83개의 현악 4중주곡, 24개의 오페라 《천지창조》를 비롯한 4개의 오라토리오, 14개의 미사곡, 20개의 피아노협주곡, 기타 수많은 종류의 곡이 있다. 한결같이 명랑하고 쾌활하며, 전형적인 고전파음악의 성격을 지닌 걸작들이다. 모차르트(Wolfgang Amadeus Mozart, 1756∼1791)는 35세의 짧은 생애를 살았지만 주옥같은 명작을 많이 남겼다. 모차르트의 오페라는 독특한 유머 감각과 넘치는 창작적 기지로 시종 일관되어 있어 그의 천재성을 유감없이 발휘하여 고전주의 오페라의 최고봉에 올라서 있다. 그리고 하이든이 확립한 소나타 형식에 풍부한 색채감과 음악다운 즐거움을 부여하여 자유분방하게 작곡하였다. 모차르트는 그야말로 음악을 더할나위없이 아름다운 것으로 만들어 주었다. 그의 작품은 41편의 교향곡을 포함하여 600여곡이 넘는데 모두 모범이 될 만한 것이며, 작곡의 중점을 오페라에 두었으나, 교향곡, 협주곡, 실내악곡, 미사곡등 매우 광범위한 작곡활동을 하였다.
베토벤(Ludwing van Beethoven, 1770∼1827)은 하이든과 모차르트에 의해 완성된 고전파음악에 풍성한 생명을 주어 알찬 열매를 가져오는 마지막 매듭을 지었으며 낭만파의 새로운 장에 문을 열어 준 교량적 역할을 한 위대한 작곡가이다. 베토벤은 신체적 장애로 그의 창작세계는 고통의 연속이었지만 영원불멸한 그의 작품은 그의 생애를 더욱 빛내고 만민의 가슴에 큰 감동을 주고 있다. 음악의 전 분야에 걸쳐 작곡된 그의 작품에는 하이든과 모차르트가 개발한 고전형식에서 발전부의 확대, 코다부분의 계속적인 장려한 음악진행, 악장편성의 자유로운 취급, 교향곡의 제3악장에 미뉴에트 대신 스케르초로의 교체, 강약법의 급변 등 여거 형태의 독창적인 음악적 수법을 창안하여 새로운 진보적 경향을 수립함으로써 낭만주의의 문을 열게 하였던 것이다. 그의 생애를 분류하여 일반적으로 작품시기를 3부분으로 구분한다. 제1기는 1802년경까지로서 이 무렵에는 주로 하이든, 모차르트의 양식을 따르거나 그 영향을 받은 시기로서, 작품으로는 《교향곡 제1번과 제2번》, 피아노 소나타 《비창》과 《월광》등이 대표적인 작품이다.
제2기는 1815년경까지로서, 이 시기의 작품은 그 자신 특유의 힘차고 그 내용이 심각한 것으로, 그의 독특한 개성이 유감없이 발휘되는 시기로서, 교향곡 제3번에서 제8번까지, 《열정》등의 피아노 소나타, 《라즈모프스키》 현악4중주곡, 오페라《피델리오》등이 대표적인 작품이다. 제3기는 마지막 시기로서 청각을 완전히 잃어버린 이후의 영감을 통한 창작의 시기로서,《교향곡 제9번》, 《장엄미사》, 마지막《현악4중주곡》등이 있으며 모두 깊은 사색과 인생을 달관한 종교적 색채가 깃들어져 있는 음악사상 최고의 예술이라 하겠다.
[이하 서양음악사 출처: Gesang]
바로크 음악
역사적 배경:1600년에서 1750년 사이의 음악을 가리켜 바로크(Baroque)음악이라고 한다. 그러나 이 시대를 지칭하는 '바로크'라는 음악사적 용어의 적용에는 많은 이견(異見)이 있다.프랑스어인 바로크는 원래 '불규칙하게 생긴 진주'라는 뜻의 포르투갈어인 바로코(barroco)에서 유래되었다. 바로크라는 용어는 1746년에 노엘 플뤼쉬(Noel Pluche)가 음악을 'musique chantante(유연한 음악)'와 'musique baroque(거친 음악)'로 구분하면서 다소 저질스러운 의미로 해석되었다. 이 시대는 절대 군주의 시대로, 변화와 모험, 이성과 신앙에 사람들의 관심이 집중된 시기였다. 17세기 초에 르네상스의 본고장인 이탈리아에서 혁신적인 젊은 음악가들이 일반 문화예술의 르네상스 정신에 자극되어 새로운 양식, 다시 말해서 화성적인 반주를 가진 단선율의 양식을 장조 하게 되었다. 이것이 모노디아(Monodia)즉 단 음악이다. 이 단음악이 정착 되었을때 르네상스음악이 완성된 것이지만 이 선율음악은 대위법적인 구속에서 완전히 해방되어 서창적인 선율과 이를 뒷받침하는 단순한 화성적인 반주로 가장 직접적인 표현을 하게 된 것이다. 이는 독창가곡이나 오페라, 그리고 오라토리오로서 나타났는데, 이러한 양식에 의해 근대적인 음악이 이때부터 시작되었다고 보아야 한다.음악의 중심이 교회로부터 궁정이나 귀족사회로 옮겨지게 되면서 교회 선법은 점차 약회되고, 장조와 단조의 중심적 역할이 뚜렷해졌다. 그리고 다성 음악이 절정에 이르면서 화성 음악이 발달해 갔고, 여러 가지 새로운 모습의 양식이 나타났다.그러나, 한편 옛 겹선율에 의한 복음악이 모두 쇠퇴해버린 것은 아니며 당분간 신구 두 개 의 양식이 서로 접촉하고 영향을 주며 사용되었다. 독일이나 네덜란드의 많은 음악가는 그 풍부한 화성적 가능성에서 복음악적인 방향으로 나갔고, 이에 반해 이탈리아의 대부분의 음 악가는 르네상스적인 단음악을 택하고 오페라나 아리아, 그리고 소나타와 협주곡의 양식을 창안 발전 시켰다.이 두 개의 조류는 18세기 후반에 이르러 하이든이나 모짜르트등의 고전음악에서 화해하고 교류하게 된다. 이 르네상스 정신의 최고의 발현시대라고 할 수 있는 17세기부터 18세기 전 반기에 바하나 헨델이 대위법적인 음악을 완성한 복음악의 전성기에 이르는 약 150년간을 바 로크음악시대라고 부른다. 원래 바로크(Barock)라는 말은 주로 미술에서 사용된 시대양식의 개념으로서 스페인의 베라스케스, 네덜란드의 란브란트 등에서 볼 수 있는 화려하고 변화있는 색채, 웅대한 구도, 장식 적인 곡선, 극적이고 정열적인 표현 등이 바로크예술의 특징이다.바로크 음악은 원칙적으로 저음에 기초를 두어 그위에서 화성적인 성부를 배정해 가는 통주 저음기법을 기반으로 대조적인 협주양식, 즉 강주와 약주, 전 합주와 독주, 밝은 것과 어두운 것과 같은 대비적인 효과를 추구하고 심리적인 감동과 극성을 표현하기 위해 선율울 장식하고 화성에서 으뜸음을 중심으로 힘차고 색채감과 극감을 더해 준다. 그리고 마로크음악의 사회 적 바탕은 절대주의의 귀족 제도로서 주로 극음악과 기악음악의 분애로서 이탈리아가 그중심 이 되었다.
바로크 음악이라고 하면 대체로 극음악이 탄생한 1600년경부터 바흐가 죽은 1750년경을 말하는데 이 시대는 르네상스 시대에 싹튼 인간중신적 세계관이 팽배해져서 점차 시민계급을 성장시켰고 사상적인 면에서도 합리적인 관념철학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바로크(Baroque)란 말은 "찌그러진 진주"라는 의미로서 이 시대의 음악은 안정감 대신 약동감을 특징으로 하여 웅장하고 거대하면서도 거기에 다채로운 장식이 함께 가해지는 것이다. 대체로 17세기 전반을 걸쳐 이탈리아를 중심으로 발달한 단성음악 양식과 18세기 독일을 중심으로 한 대위법적 다성음악 양식이 발달한 시대이다. 바로크 음악의 시작은 이탈리아의 피렌체에서 활동한 카메라타(Camerata)라는 문예인들의 새로운 음악 관념에서 비롯된다. 이들은 대위법적 음악이 가사의 내용을 전달하는데 장애가 된다고 생각하여 가벼운 기악반주 위에서 가사가 명료하게 전달되는 새로운 음악 형태를 탄생시켰는데 이것이 단성음악(Monody)이다. 이것을 적용하여 카메라타 일원인 갈릴레이(V. Galilei, 1520∼1591)와 카치니(G. Caccini) 1545∼1618)는 최초로 반주가 딸린 서정가곡을 만들었다. 단성음악의 선율반주는 저음 현악기로 연주되는데 이것은 작품전체를 통하여 계속되기 때문에 통주저음(Basso Continuo)이라고 불렀다. 이러한 통주저음은 저음부 아래에 화음을 지시하는 숫자를 붙였기 때문에 숫자저음(Figured Bass)이라고도 부른다.
오페라의탄생:16세기말경 이탈리아 피렌체의 음악애호가 바르디(G. Bardi, 1534∼1562)의 집에 젊은 음악가와 시인들이 모여 새로운 음악을 연구했는데 이 집단을 카메라타(Camerata)라고 불렀다. 1597년에 시인 리눗치니(O. Rinuccini, 1563∼1623)의 대본에 페리(J. Peri, 1561∼1633)가 오페라《다프네(Dafne)》를 작곡하였다. 두 번째 작품도 리눗치니 시(詩)에 페리와 카치니가 작곡한 《에우리디체(Euridece)》를 1600년에 상연했는데 현재 남아 있는 것은 에우리디체뿐이다. 그런데 근대적 개념의 오페라에 접근되는 진보적인 오페라를 만든 사람은 몬테베르디(C. Monteverdi, 1567∼1643)이다. 그는 1607년 《오르페오(La Favola d' Orfeo)》를 상연하였는데 대규모의 합창과 관현악, 무용 등이 한데 어울려 이전의 오페라라는 표현양식에서 비교가 되지 않았으며. 기악의 서주로 시작하였고 댄스음악이 있고 신포니아라고 하는 기악곡이 사이에 포함되었다. 그리고 스카를라티(A. Scarlatti, 1660∼1725)를 중심으로 한 나풀리악파가 생겼으며 프랑스에서는 륄리(J. Baptiste Lully, 1632∼1686)를 중심으로 프랑스 오페라가 생겼으며, 영국과 독일에서도 오페라 운동이 활발하게 일어나게 되었다.
오라트리오와 칸타타:바흐의 헨델은 오라토리오·칸타타·협주곡 등에서 불멸의 작품을 남겼다.오페라보다 조금 늦게 종교음악의 한 형식으로 태어난 오라토리오는 초기의 모습이 오페라와 매우 유사하였다. 오라토리오의 특성은 오페라와 달리 종교적 내용으로 무대장치, 연기가 없다는 것이지만 초기의 오라토리오는 오페라와 마찬가지로 연극적인 형태를 모두 갖추었다. 최초의 오라토리오는 카발리에리(Emilo de Cavalieri, 1550년경∼1602년)의《영혼과 육체의 극》인데 성서적 내용이 약하고 연극적인 면이 강하여 오페라와 유사한 점이 많다 하겠다. 그후 카리씨미(Giacomo Carissimi, 1605∼1674)가 쓴 《예프테, Jephte》로써 오라토리오의 음악양식을 확립하였다. 바로크말기의 가장 위대한 작곡가는 헨델(George Friederch Handel, 1685∼1759)이다. 그는 극적 요소를 더욱 강조하여 합창을 증가시켰고, 소재도 성서적 내용이외에 고대 그리이스의 신화적 인물을등장시키는 등 기존의 오라토리오의 음악 양식에서 탈피하여 오라토리오의 새로운 장을 열었다. 그의 불후의 명작 《메시아, Messiah》는 종교적 차원을 넘어서 범 세계적인 작품이 되었다. 칸타타의 음악형식구조는 오라토리오와 유사하다. 다만 그 규모가 축소되어 전례용으로 사용되기 적합하였다. 17세기중엽부터는 성서적 내용 이외에도 서정적인 세속가사를 사용하여 칸타타의 영역을 넓혔다. 바흐(Johann Sebastian Bach, 1685∼1750)은 200여편의 코랄을 사용한 교회 칸타타를 작곡하여 바로크 칸타타의 최고경지를 이룩했다.
기악음악:바로크시대의 기악음악은 중세에세부터 내려오는 악기의 발달과 양식의 확립, 새로운 악기의 출현으로 성악음악과 마찬가지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게 되었다. 건반악기는 독주용악기로도 사용되었으나 통주저음의 필수적인 악기로 어떠한 기악음악에도 나타나게 되었다. 바로크시대에 이르러 최고의 음향을 자랑하는 오르간을 위시하여 클라비코드, 쳄발로 등은 독주나 합주용 악기로 인기가 높아 많은 작품을 남겼다. 1709년에는 크리스토포리(B. Cristofori, 1655∼1713)가 만든 피아노(Clavicembalo col Piano e Forte)가 등장하여 피아노 문헌의 첫장을 열었다. 현악기 부분에서도 큰 발전이 있었는데, 르네상스를 점유했던 비올족이 18세기에 들어서면서 바이올린, 비올라, 첼로, 더블베이스의 현악기군을 이루는 바이올린 족으로 대치되어 관현악 음악의 중심을 이루었다. 특히 크레모나(Cremona)출신의 아마티(N. Amati), 과르네리(G.B. Guarneri), 스트라디바리(A. Stradivari)등의 바이올린 제작자들이 우수한 악기를 만들어 바로크 현악을 더욱 수준 높은 음악으로 끌어 올렸다. 르네상스를 지배하던 루트는 바로크시대에 들어오면서 그 빛을 잃고 퇴조하여 그 명맥만을 유지시켰다. 관악기는 여전히 정립되지 않았으나, 관현악에서 그 중요성이 더 새져서 악기의 사용 빈도수가 높아갔다.
바로크시대의 작곡가들은 르네상스시대에 유행했던 몇몇 기악형식을 여전히 사용하였고, 아울러 새로운 음악형식을 개발하여 근대적인 기악 음악으로 그 모습을 점차 바꾸어나갔다. 르네상스의 기악형식이었던 푸가(Fugue)는 바로크시대에 와서는 독립된 기악작품은 물론 성악, 합창곡에서도 그 기법이 사용되었다. 모음곡(Suite)은 무곡을 여러 개의 부분으로 확대해서 독주와 합주용의 기악 음악형식으로 사용되었다. 모음곡은 주로 같은 조성의 알르망드(Allemande), 쿠랑트(Courante), 사라반드(Sarabande), 지그(Gigue)를 주로 하여 그밖에 지그의 앞과 뒤에 미뉴에트(Minuet), 부레(Bouree), 가보트(Gavotte)등이 삽입되기도 하였다. 바로크시대에 와서 르네상스의 세속 성악음 들을 성악과 기악의 혼합 내지는 악기만으로 연주하는 형태가 흔하였는데 이것이 다악장 형식의 소나타(Sonata)라는 이름으로 흡수되었다. 많은 바?壙? 소나타는 두 개의 바이올린과 콘티누오를 위하여 작곡되었는데 이것이 트리오 소나타이다. 다른 형태의 소나타로 (Sonata da Camera)와 교회소나타(Sonata de Chiesa)라는 두 종류로 분류지었고 일반적으로 같은 조성의 4악장으로 구성된다. 바로크시대의 협주곡은 합주협주곡(Comcerto Grosso)과 독주협주곡(Solo Concerto)의 두 종류로 구분되는데 합주협주곡의 확립자는 코렐리(Arcangelo Corelli, 1653∼1713)이고 독주협주곡은 3악장 형식으로 오늘날의 협주곡 악장의 구성원리를 제공하였다. 대표적 작곡가는 비발디(Antonio Vivaldi, 1678∼1741)로서 근대적 개념의 협주곡 완성자이다. 관현악을 의미하는 신포니아(Sinfornia), 서곡(Overture), 협주곡(Concerto) 등이 있었으나 용어의 구분처럼 음악적 내용의 구분이나 표준은 서 있지 않았고 관현악의 형태도 아직 악기의 구성이나 기준이 일정치 않았다. 관현악의 주된 악기는 현악기였고 관악기나 타악기는 간헐적으로 사용되었다.
르네상스 음악
1450년 ~ 1600년
역사적 배경:1450년부터 1600년까지를 르네상스 시대라 한다. 르네상스란 서유럽 여러 나라의 시민계급을 중심으로 일어난, 고대 그리스·로마의 철학과 예술에 대한 관심의 문예부흥 운동이다.이 말은 중세 말에 대한 '고딕'이나 다음장에서 언급될 '바로크'와 같이 미술사에서 빌려온 용어이다.이 말의 문자대로의 의미는 '재탄생'으로서, 고대 문화의 부흥을 뜻하는 말이었다. 미술등 문예의 경우에는 많은 부활을 보였지만 음악에서는 이와 같은 의미의 '재탄생'은 없었다. 그러나 넓은 의미의 르네상스는 인간정신의 재탄생으로서 인본주의적 예술창작 태도, 조화 및 비례의 중시, 합리적인 기법의 탐구, 명확한 표현 등이 그 중심 내용이므로 음악에서의 이런 양식상의 특징이 확연히 나타나는 점을 지적할수 있다. 즉, 음연이 현저히 넓어지고, 새로운 음공간이 개척 된 것은 회화에 있어서 원근법과 비길 수 있으며, 악보 인쇄술의 발명과, 정량 기보법의 보급은 르네상스 의 과학정신과 관련된다. 이러한 사회적 기운은 음악에서 세속 음악과 다성 음악, 기악의 발달을 촉진하였다. 음악에 있어서는 대체로 16세기전반을 걸쳐 발달한 단성음악 양식의 시기를 말한다. 중세의 교권의 지배에서 인간성을 회복하는 시민계급중심의 자유주의적이고 인본주의적인 정신을 기초로 하여 학문과 문화에 대한 관심이 높아져서 과학과 예술분야에서 대단한 발전을 가져왔다. 이러한 학문과 문화의 놀라운 발전은 음악에도 영향을 미쳐서 작곡가들은 심미적인 인본주의 작품을 만들려는 경향을 갖게 된다.
음악적특징:르네상스 음악은 프랑스와 네덜란드를 중심으로 나타나서 영국·이탈리아·독일 등으로 퍼졌다. 그리고 조스캥 데 프레와 라소가 중심이 된 네덜란드 악파와 영국의 작곡가들은 3성부의 다성 음악 작품을 작곡하였고, 네덜란드 악파에 의해 모방 대위법이, 루터에 의해 찬송가 형태가 확립되었다.르네상스 음악은 주로 이탈리아에서 발달했는데 그 방법에 있어서는 로마와 베네치아가 조금 다르다. 로마에서는 교회음악이 현저하게 발달했으며 오라토리오에 있어서도 크게 발달하였다.
이 시기에 있어서 음악은 그 어떤 시기보다도 많은 음악이 작곡되고 연주되어 음악가들은 전보다 높은 명성 을 얻었으며, 마침내 '위대한 작곡가'라는 개념이 처음으로 등장하게 된다. 또한 음악에 관한 새로운 종류의 이론 서적이 나타나기 시작했는데, 르네상스 기간에 있어서 음악의 성장에 가장 큰 공로 중 하나는 바로 음악 인쇄의 시작일 것이다. 또한 16세기 초에는 음악을 작곡하는 방법에 변화가 이루어졌는데, 즉 지금까지는 한 성부씩 작곡하여 왔으나 여러 성부를 하나의 전체로서 동시에 생각해 내고 쓰기 시작하여 총보(SCORE)를 사용하기 시작한 것이다.
베네치아에서는 주로 세속적인 음악과 기악의 현저한 발전이 있었으며 교회음악에는 화려한 2중창의 방법도 사용되었다. 로마에서의 대표적 작곡가인 팔레스트리나(G.P . Palestrina 1525년경 ∼1594)는 자유로운 대위법으로 작곡하고 복잡해진 대위법으로 단순화하고 한음에 한가사를 붙이는 새로운 시도와 무반주(A Cappella)양식의 교회 합창곡을 도입하여 미사곡을 비롯한 많은 종교곡으로 작곡하였다. 베네치아에서는 안드레아 가브리엘리(Andrea Gabrieli 1510∼1586)와 그의 생질 조반니 가브리엘리(Giovanni Gabrieli 1554년경∼1612)가 성악을 화려하고 자유롭게 만들었으며 특히 오르간을 비롯한 기악음악을 많이 발전시켰다. 같은 무렵에 독일에서도 르네상스적인 음악이 일어났다. 그 대표적인 사람이 네델란드 출신 라소(Orlando de Lassos 1532년경∼1594)인데 그는 많은 교회용 음악과 세속적인 여러 가지 합창곡을 썼는데, 그의 작품은 강렬하고 분방하며, 불협화음과 선율의 대비를 과감하게 썼다. 르네상스를 대표하는 세속성악음악형식으로는 마드리갈(Madrigal)로서 그 음악적 특성이 다양하다. 세속 합창곡으로 목가적이거나 사랑을 내용으로 하는 가사를 쓰는데 초기에는 종교음악과 유사한 조용한 느낌의 음악이었다. 점차 정교하면서도 대위법적으로 양식이 바뀌어 후기에 가서는 독창도 사용되는 다양한 양식을 갖게된다. 라소와 팔레스트리나, 몬테베르디(Momteverdi)등의 작곡가들이 중요한 작곡가이다. 독일 르네상스의 가장 현저하고 특징있는 현상은 루터(Martin Luther, 1483∼1546)의 종교개혁에 의한 프로테스탄트(Protestant) 교회의 코랄(Choral)이다. 이 찬송가는 민요풍의 간소한 멜로디를 높은 성부에 놓고 음 대 음의 화성적인 것으로서 누구나 노래하기 쉬운 합창곡으로 가장 르네상스적이라 할 수 있다.
고대
선사시대 ~ 200년
음악은 어느 때부터 시작되었으며 어떻게 처음으로 생겨났는지는 아무도 알 수가 없다. 인류가 역사를 알게 된 것은 말이 있고, 글이 생긴 이후 일이며, 음악에 관한 모든 실제적인 지식은 어떤 적당한 기보법이 만들어진 이후에야 가능한 일로서 그 이전의 일들은 상상으로밖에는 알 수가 없는 일이다. 음악의 발상에 관한 설은 세계의 어느 민족에서나 찾아 볼 수 있는데 신이 음악을 만들었다는 신수설(神授說)과 자연발생설(自然發生說)을 들 수가 있다. 미개한 민족에 있어서도 어떤 형태이든간에 음악이 있었던 것으로 보아 음악은 분명히 인간의 본능의 하나라고 하겠다. 그리하여 음악은 인간의 역사와 함께 같이 시작되어, 지금 남아 있는 벽화나 고분의 유물, 그리고 지구상에 아직 남아 있는 아프리카인, 아메리카인디언, 오세아니아 종족들과 같은 원시집단의 음악연주와 실제로 오늘날까지 어느 정도 문화풍토를 지니고 있는 중국, 인도, 샴, 일본 등이나 다른 동양인 집단의 고대음악 연주들을 통하여 상상으로 알아 볼 수 있는 것이다. 미개한 원시시대의 원시인들의 음악은 영적인 것과 연관된 일련의 신앙적인 것에 연루된다. 신앙을 필요로 하여 음악이 발생되었고, 이러한 음악은 마법의 기능으로 병을 고친다고 생각했고, 노동이나 전쟁에 사용하기 위하여 음악이 사용되었을 것으로 추정한다. 고대음악의 발자취는 문명의 발상지인 국가들 즉 이집트, 메소포타미아, 중국, 인도 등에서 찾아 볼 수 있다. 이들 지역의 고대국가들의 음악도 종교의식과 관련된 것들이고 그 이외에는 궁정에서의 향연이나 오락등을 위한 것과 전쟁에 사용하기 위한 음악들로 추정된다. 이 시대의 음악은 화성도 대위법도 없는 단선율로서 그 선율도 아주 소박한 것이었다. 특히, 고대 이집트와 메소포타미아 지방에는 기원전 4,000년경에 벌써 매우 수준높은 음악이 있었다. 이들은 하프와 플루트 종류, 그리고 타악기등을 사용하였고 이집트 지방에서는 B.C 3.000년경에는 일종의 관현악도 행해졌다.
이집트나 메소포타미아보다 약 1,000년 늦게, 유대에서는 음악이 종교와 밀접한 관계를 맺으면서 발달하여 B.C 1.000년경, 즉 다윗왕이나 솔로몬왕 시대에 그 전성기를 맞이하였는데 이것은 구약성서에도 자주 볼 수 있다. 고대 그리스의 음악은 B.C 1.000년경에 성하였는데, 그리이스 사람들은미적 감각이 발달해 있었고, 동화력이 강해서 자기들의 음악을 발전시켰고, 또한 고대 오리엔트 여러 민족의 음악을 흡수하고 동화하였다. 즉 고대의 음악은 그리이스 사람들의 노력에 의해 종합되고 체계화되어 그 수준을 한층 높였다. 그들은 음악을 단지 제사와 오락 뿐만 아니라 매우 지적으로 다루었으며 음악에 대한 철학성, 윤리성과 같은 형이상학적인 요소가 논의되었고 과학적인 연구를 하였으며 음악을 교육상 대단히 중요시하였다. 그러므로 고대의 대부분의 음악문화는 그리이스에서 시작되었다해도 과언이 아니며, 그리이스의 음악이론은 로마를 거쳐서 오늘날의 서양음악의 모체에까지 직접적인 영향을 주고 있는 것이다. 그리이스 음악에 중요하게 담당되었던 악기는 키타라(Kethara)와 아울로스(Aulos)로서 이것은 시리아 지방에서 일찍이 발견된 것들이다
중세 200년 ~ 1450년
역사적 배경:6세기부터 15세기까지를 중세라 하며, 성가(찬트)의 발전과 다성 음악의 시작, 세속음악의 출현 등이 이 시대 음악의 특징이다.중세 음악의 주류를 이루었던 크리스트교 음악은 '그레고리오 성가'가 대표적이며, 이러한 성가는 10세기까지 발전했고, 11세기에는 다성 음악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이 양식은 후에, 노트르담악파나 아르스 노바 음악으로 이어졌다.중세는 봉건사회제도의 지배하에 있던 그리스도교의 사회로서 정치문화에 있어서 강력한 종교적 지배를 받던 시대였다. 중세기의 음악사는 그리스도교 교회의 의식과 결부시킨 성가(聖歌)로 시작한다. 그러므로 중세기에 유럽음악이 발달할 수 있었던 원동력은 그리스도교를 들지 않으면 안 된다. 그리스도교는 그 모태가된 유대교의 영향도 있지만 그밖에 음악을 존중하여 초기단계부터 독특한 의식음악을 발전시켰던 것이다. 중세음악은 대체로 로마네스크 음악, 다성음악-고딕음악, 세속음악 등으로 크게 구분한다. 사실 지금 우리가 알고 있는 소위 클래식 음악이란 모두 여러개의 성부를 가진 음악이기 때문에 처음 대하는 감상자들은 서양 음악이 본래부터 여러 성부를 가진 음악(다성음악)이라고 착각할 수도 있다. 그러나 서양음악도 처음에는 하나의 선율로만 이루어진 단선율의 음악이라는 것을 기억해야만 하고 , 무수한 변화를 거쳐 오늘날의 형태에 이르렀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이렇게 단선률이 복선률로 바뀌게 된 첫 시기가 바로 9세기 중엽이다. 따라서 약 9세기 중엽까지는 단선율이 지배하던 시대이다 물론 9세기 이후에도 단선율 음악은 계속 독자적인 발전을 보여왔지만 이전과 같은 중요성은 없었던 것이다. 이렇게 단선율이 지배하던 시대를 로마네스크 시대라 한다.
음악적 특징:(1) 로마네스크 음악(Romanesque Music) 로마를 중심으로 하여 발달되었던 음악으로서 이것은 로마네스크 미술과 통하는 양식이다. 그 주요한 것은 초기 기독교의 교회음악으로서, 고대음악처럼 단선율이지만 대체로 성악이며 기독교적인 가사를 가지고 있다. 이 음악은 4세기에서 7세기에 이르러 그레고리 성가로 절정을 이룬다. 기독교는 처음부터 음악을 존중했으나, 처음에는 기독교 박해로 숨어서 음악을 하다가, 기원후 313년에 기독교가 로마의 국교로 인정받은 후에야 비로소 성대하게 발전시킬 수 있었다. 이러한 음악은 처음에는 시리아, 팔레스티니, 소아시아 등지의 음악, 즉 유태적이거나 그리이스적인 음악들을 필요에 따라 적당히 기독교적으로 고쳐서 쓰기 시작했다. 이러한 것이 그후 로마의 각 지방에서 조금씩 서로 다른 양식의 음악을 가져오게 하였던 것이다.로마의 교회세력이 크게 떨치자 지금까지 지방에서 행해지던 교리와 의식, 성가등을 일정한 형식으로 통일시켜야겠다는 생각을 갖게 되었다. 성가의 경우 밀라노의 주교 암브로시우스(339년경∼397년)가 개혁한 암브로시오 성가(Ambrosian Chant) 이래 2세기후 교황 그레고리우스(Gregorius 540∼604)가 제정한 그리고리우스 성가(Gregorian Chant)로서 마침내 그리스도교 음악을 통일시켰다. 이 전통적인 교회음악인 그레고리오 성가는 단선율의 라틴어 가사로 된 단순한 것이지만 그 유동적인 선율은 실로 거룩하고 아름답다. 이 성가는 지금도 카톨릭교회에서 공식적인 음악으로 쓰여지고 있다. 그레고리오 성가는 순수한 음악임과 동시에 예배에 속하는 기능 음악이다. 이시대의 예배에는 두 가지 기본적이 형식이 있다. 그것은 성무일과(Office)와 미사(Mass)인데 성무일과는 하루에 정해진 시간에 정해진 순서대로 예식으로 모두 8개가 있다. 성무일과를 위한 그레고리오 성가는 안티포날레(Antiphonale) 또는 안티포날(Antipho nal) 이라고 하는 의전 책에 수록되어 있다. 미사는 성무일과 보다는 늦게 발달했지만 카톨릭 교회의 기본적인 예배로 'MASS'라는 말은 '가시오 집회는 끝났소(Ite missa est)'라는 의식을 끝내는 구절에서 유래 되었다. 미사에는 평소에 일반적으로 지켜지는 일상부 미사와 특별한 절기에 지켜지는 특별 미사가 있는데, 일상부 미사는 보통 키리에, 글로리아, 크레도, 상투스, 베네딕투스, 아뉴스 데이로 이루어진다. 그레고리오 성가의 음악적 특징은 앞서 말했듯이 하나의 선율로 이루어진 단선율 음악이다. 그리고 가사면에서 본다면 모두 라틴어로 쓰여져 있지만, 성서적 가사를 갖는 것과 비성서적 가사를 갖는 것으로 구분되며, 선율의 윤곽은 가사의 강세형을 반영하지만 선율을 특별한 감정 또는 서술의 효과를 적용시키려는 노력은 찾아볼 수 없다. 정확한 박자와 마디의 표시가 없어서 길게 낭송하는 듯이 보인다. 음계는 헥사코드(hexachord)라고 불리우는 6음 음계 체계로 이루어졌으며, 음의 기록은 네우마(neuma)라고 불리우는 기호들을 사용하여 표시하였는데, 보다 명확한 기보를 위해서 f음을 대표하는 붉은 선을 그어 그 아래 위에 기호들을 위치시켰고 조금 지나서 c'음을 표시 하기위한 노란선이 그어졌고, 11세기에 이르러 귀도 다레초에 의하여 4선 보표가 사용되게 되었다.
(2) 다성음악-고딕음악(Gothic Music)
다성음악의 발달은 오르가눔(Oraganum)의 탄생으로 시작된다. 서양음악 구조의 두가지 큰 법칙은 화성법과 대위법인데, 9세기 중엽 서양음악에서 최초의 대위법이 나타나게 된 것이며, 대위법의 기초가 바로 오르가눔에서 비롯되었다 최초의 오르가눔은 기존 선율에 대해 5도위나 4도 아래로 중복되거나 옥타브로 한 번더 중복되는 현상을 말하는데, 이것을 평행오르가눔이라고 불렀다(이런 현상을 기존 선율의 종적 확장이라고 한다.) 그 후 11세기경 기존 선율은 저성부에 놓이고 대위선율은 상성부에 놓이게되는 자유 오르가눔과 12세기의 화려오르가눔이 탄생하게 된다. 이와 관련된 악파가 생 마르샬(St. Martial)악파이며, 전기 고딕으로 분류되기도한다, 서양 예술사에 알려진 최초의 위대한 다성음악 작곡가는 12세기 말경 노트르담 교회의 합창단장이었던 레오냉이 있는데, 그는 후에 모테트의 모체 가 되는 디스칸투스 양식으로 된 클라우술라를 도입하였다. 그후 13세기경 중세의 이상적음향(Sound Ideal)인 3성부 음악을 이루는데 기여를 한 페로탱이 나타나 노트르담 성당을 중심으로 노트르담 악파를 형성한다.대체로 10세기에서 15세기에 이르는 네덜란드와 로마를 중심으로 발달한 다성음악(Polypony)형식의 교회음악을 말하는 것으로 당시 교회의 건축양식에서 유래되었다. 다성음악은 구라파 북쪽 민족들 사이에 대략 6,7세기경부터 시도되었던 것을 10세기에 이르러서 이론적으로 체계화되었다. 이것은 그 당시 노래되던 그레고리우스 성가를 정선율(定旋律, Cantus Firmus)로 하고 여기에 새로운 성부(오르가눔, Organum)를 추가하는 형태로 시작되었다. 이 다성음악-고딕음악은 음악을 교회 음악에서 벗어내어 새로운 세계에 새로운 공기를 불어 넣으려는 운동으로 눈부신 개혁과 시도가 계속된 14세기의 찬란한 아르스노바(Ars Nova, 새 예술)와 15세기가 되면서 네덜란드를 중심으로 한 대위법적인 다성 음악의 극치를 이룬 네델란드악파(Netherland School)의 음악을 포함하고 있다.
3)아르스노바(Ars Nova)
13세기를 안정과 통일의 시대라고 한다면 14세기는 변화와 다양함의 시대라고 할 수 있다. 후기 고딕시대로 분류되는 14세기에는 이전의 신 중심적인 사고에서 탈피, 인간 이성과 성스러운 계시는 분리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즉 인본주의(Humanism)가 발생하게 되는데, 이것은 후에 르네상스에 가장 중요한 영향을 미치게된다. 이러한 기운을 안고 14세기초 프랑스에서 그리고 조금 늦게 이탈리아에서 새로운 음악형태가 일어나는데 이것을 프랑스에서 그리고 조금 늦게 이탈리아에서 새로운 음악형태가 일어나는데 이것을 프랑스 작곡가이자 이론가인 필립 드비트리(PHILLIP PE DE VIRTY/1291 ~ 1361)의 논문 제목을 따서 아르스 노바(Ars nova/신예술)라고 불렀으며 이전시대를 아르스 안티카(Ars antiqua/구예술)라고 부르게 되었다. 이렇게 1300년경에 최초로 신음악이 탄생하게 되었는데, 이후 대략 300년의 터울로 신음악이 그것이다. 14세기에는 종교음악 작곡으로부터 세속음악 작곡으로 그 강조점이 크게 변하게 되었으며, 다양하고 자유스러운 리듬, 그리고 일정한 조의 중심을 향해 진해하는 화성감각이 자라나게 되었다, 즉 5도와 8도가 드물어지는 반면, '고정형식(Formes fixes)'이라고 불리우는 발라드(ballardes), 론도(rondeau), 비를레(virelais)가 발생한다. 이 모든 14세기의 특징을 창출한 가장 유명한 작곡가가 바로 기욤 드마쇼(Guillaume de Machaut)이다. 15세기 초 영국에서도 장조 조성으로 향하려는 경향을 보였는데 이 시기의 지도적인 작곡가로는 존 던스터블(John Dunstable)이 있다.
(4) 세속음악(Secular Music) 11세기경까지 유럽의 모든 예술과 학문 분야는 성직자들이 주도하였으나 12세기에 이르러 봉건사회의 기사계급은 그동안의 교회와 수도원의 전통적인 권위의 지배 속에서 벗어나 인본주의적인 가치관을 추구하였다. 또한 오랜 십자군 전쟁 이후 극단적인 종교열은 침체했고 동방의 화려한 이국문화의 접견으로 세속적 요소가 사회생활에 팽대해졌다. 이러한 사회적인 분위기 속에서 세속음악은 점차 민중 속에서 발전해 나갔다. 대부분의 세속음악은 단선율로서 악기와 함께 연주되었다. 이러한 세속음악은 12세기경부터 귀족계급인 남 프랑스의 투르바두르(Troubadour)와 북 프랑스의 투르베르(Trouvere)에 의하여 전파되었고 작품도 많이 나왔다. 그들은 자작의 시에 노래를 즉흥저긍로 불렀다. 여러 곳의 왕궁과 귀족의 저택을 방문하여 간단한 악기의 반주로 그것을 노래했다. 시의 sodyhd은 사랑노래와 발라드 풍의 이야기,자연의 찬미,종교적 또는 도덕적인 것이었다. 그들은 예인(藝人)도 고용하여 다녔는데 자작의 시를 그들에게 노래시켰다.
이들은 프랑스에서는 8세기경부터 종글뢰르(Jongleur) 영국에서는 민스트럴(Minstrel)이라고 했다. 13,4세기경에는 독일 남부에서 오스트리아에 걸쳐 미네쟁거(Minnesange)라는 음유시인(吟遊詩人)이 있었다. 이들은 기사계급이 많았는데 이후 세속음악은 점차 기사계급에서 교양있는 시민계급으로 전해졌다. 이들이 독일의 마이스터징거(Miestersinger)이다. 이들은 16세기경까지 계속되는데 독창적으로 창작곡을 내는 것보다 기존의 성가나 세속음악을 수정하여 부르는 경우가 많았다.
(5) 기보법의 발달 그레고리 성가를 위한 기보법이 9세기경에 네우마(Neuma)라는 그리이스말로 창안되었으며 1세기경에는 이탈리아의 귀도 다레쪼(Guido d'Arezzo)는 네우마를 4개의 평행선상에 두고 음의 높낮이를 표시하는 기보법을 창안하였고, 또한 계명부르기를 고안하였다.13세기경에는 쾰른의 성 요한 수도원의 수도사이며 교사인 프랑코 데 콜로니아(Franco de Colonia)에 의해 음의 높낮이뿐만 아닌 길이도 표시할 수 있는 정량기보법을 창안하였다. 오늘날의 5선보에 의한 편리한 기보법이 완성되기까지는 천 여년의 오랜 세월이 필요했다
숨 돌리기
출입국 수속에, 잘 되지도 않는(?) 말로 관공서 일 보느라 얼마나 답답했을까 ? 그래서 이 장에서는 말 그대로 "숨 좀 돌려보기" 위해서 몇 자 써 보았다.
멋진 곳에 가서 맛진 음식을 먹고, 스포츠를 즐기며 여가를 활용하는 방법은 수도없이 많지만, 독일에서 기본적으로 누릴 수 있는 몇 가지를 소개하겠다.
사람들과 어울려 어디론가 견학을 가도 좋겠고, (A.A.A. 에서 제공하는 행사들에 꼭 참여하라.) 축제에 참여하거나 Bier Garten 에 가서 맥주를 들이키며 낭만스런 오후를 보낼수도 있다. 도심지에서 행해지는 각종 공연들, 주말에 북적대는 Night, 기숙사의 Party 들...
아니면 홀로 조용히, 공동묘지(공원)를 산책하거나 도서관에 가서 책을 벗해도 좋겠다. 딱딱한 독일말이 실증나면, 한 주말 잡아 이웃나라 탐방을 가도 좋은 일 ! 가능성은 많다. 내가 2년간 경험하고 찾아다닌 재미거리들이 이 정도라면, 나머지는 여러분 누리기 나름일 것이다.
먼저 먹거리들을 보자.
독일요리하면 떠오르는 것들이 있는가 ?
물론 프랑스 요리가 유명하다지만, 독일의 맥주, 와인, 치즈, 빵, 그리고 소세지같은 가공육류 등은 세
계적으로 유명한 아이템 들이다. 남부지방 특유의 요리또한 다채롭다.
특별히 "맥주, 축구, 소세지" 이 세가지는 항상 붙어다는 거란다.
레스토랑에서 흔히 접할 수 있는 대표적인 고기요리들은 다음과 같다.
슈니첼 (Schnitzel) 얇게 썬 고기의 독일풍 커틀릿
슈바이네 학세 (Schweine Haxe) 돼지 정강이고기 구이 (족발요리의 일종)
슈바이네 브라튼 (Schweine Braten) 돼지고기 로스트
사우어브라튼 (Sauerbraten) 절임 쇠고기 로스트
맥주
뮌헨을 중심으로 한 바이에른 지방, 북쪽 함부르크, 도르트문트가 3대 산지로 유명하다.
9월이 되면, Oktober Fest라는 맥주축제가 전국 곳곳에서 열리는데, 뮌헨에서 그 규모가 가장 크다.
대표적인 맥주로는 -
필스너(Pilsner) 거품이 부드럽고 짜릿한 맛
쾰쉬(Koelsch) 황색 내지 갈색의 빛깔로 산뜻한 맛
둔켈(Dunkel) 흑맥주. 알콜도수가 높은 편이며, 걸쭉한 느낌이다.
베를리너와이제(Berliner Weisse) 신맛이 있는 맥주라우흐비어(Rauchbier) 다갈색의 쓴 맛.
라우흐비어(Rauchbier) 다갈색의 쓴 맛.
와인
독일은 포도재배의 북한계지이다. 미네랄이 천천히 흡수된 포도에서 생산된 와인은 고귀한 향을 자랑
한다. 생산량의 80%이상이 백포도주이다. 10-11월 사이에 주로 남부지방에서는 Besenwirtschaft 라
는 와인축제(?)가 열린다. ("축제" 설명참고)
대표적인 지역와인으로는 -
라인와인 - 부드러운 리스링 배포도주가 고급상품이다.
모젤와인 - 신선하고 산뜻한 맛의 와인
바덴와인 - 프라이부르크, 바덴바덴에서 생산된다.
프랑켄 와인 - 맛이 진한 남성적 취향의 와인.
와인 등급에 관하여 -와인의 격은 포도를 따는 방법과 수확시기에 따라 달라진다.
카비네트(Kabinett) - 제철(10월)에 충분히 익은 포도로 만들어진 고급스러운 와인.
슈페트레제(Spatlese) - 제철보다 조금 늦게 딴 포도로 만들어 신선하고 산뜻한 맛의 상급와인.
아우스레제(Auslese) - 완전히 익은 포도로 만든 와인, 맛과 향이 진하다.
베어렌 아우스레제(Beernauslese) - 건포도 상태의 포도알을 골라내 만든 맛과 향이 좋은 최상급
의 와인.
"놀거리" 와 "볼거리"
(공휴일은 기차역과 중앙광장 부근을 제외하고는 대부분의 은행과 상점이 휴업을 한다.)
1월 1일. 아니 12월 31일 저녁부터 온 도시에 축포소리가 가득하다.
0시 일제히 교회종소리가 나기 시작하면 화려한 불꽃놀이는 절정이 된다. 남녀노소 할 것 없이 이 날엔 누구나 폭약 하나씩을 들고 액운을 쫓는 날 ! 화약을 겁나게 뿌려댄다. 물론 사고도 많이 난다.
(간호사로 계셨던 우리 엄마는 이날이면 응급실에서 늘 비상대기셨다.)
1월 5일. 노동자의 날 (Tag dert Arbeit)
1월6일. 예수 공현축일 Heilige Koenige (Bayern 주와 Baden-Wuertemnerg주).
Fasching 또는 Karnival (주로 남부지방. 특히 Koeln에서 성대하게 펼쳐진다. )
유동적이나 3월 말-4월 중순중에 해마다 지키는 - 예수 그리스도의 수난 금요일, 부활주일(Ostern) 및 월요일 (학교도 한 주 쉰다 ),
3월 말 - 4월 중 봄 축제 (Fruhlingsfest ) . 광장에는 놀이기구와 야외 맥주 Garden 이 열리고, 함께나온 가족들은 봄의 따사한 햇빛을 마음껏 즐긴다.
5월 중. Muttertag 어머니의 날 / kindertag 어린이 날. 하지만 어버이 날이나 스승의 날은 따로 없고, 아버지의 날 (Vatertag)은 조금 다른 의미. 남자가 홀로 "고독을 씹는 날"이라나 !
5월 하순 성령 강림주일(Pfingstern), 성모 승천축일(Bayern, Saarland 주)
(행렬 : 대부분의 주민이 가톨릭 신자인 남부 독일에는 바로크 시대의 신심표현인 성체거동행사 (성령강림절 열흘 후 그리도의 성체성혈축일에 거행) 가 아직도 실시된다. 특히 밤베르크와 뮌헨의 성체거동행사와 보덴세 호구(Rodolfszell)의 보트행렬, 쾰른의 라인강 행사가 유명하다.)
8월중순. 성모 승천축일 (Bayern, Saarland 주)
5월-9월. 각 도시의 여름축제(Sommerfest) - 각 도시 중심가나 강변에서 음악회, 연극, 전시회 등의
많은 공연들이 펼쳐지는 낭만적인 여름축제가 계속된다. 5월 베를린의 세계최대의 Techno 축제 Love
Parade, 프랑크푸르트의 Jazz Festival, Bonn의 음악 Festival 등등
( 연극 및 음악회 : 레퍼토리 연극무대와 상설 오케스트라는 폭넓은 초청공연을 통해 체계를 보완하고 있기 때문에 중소도시 팬들에게도 오페라, 연극, 음악회의 다양한 프로그램을 제공한다. 연극과 음악회 예약제가 정착되어 있어서 입장권을 항상 쉽게 구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입장권은 극장 매표소에서 공연2주 혹은 10일 전부터 직접 판매한다. 음악회의 입장권은 대개 신문이나 공공게시판의 광고에 적힌 매표소에서 적어도 4주 전에 예매를 해야하며 이럴 경우 추가 비용을 지불한다. 규모가 큰 여행사에는 대개 예매소도 갖추고 있지만, 추가 비용을 부과한다. 입장권은 공연이 있기 한 시간 전 바로 공연장에서 판매된다. 입장권을 구하는 데는 도시 info center 나 호텔 포터들이 도움이 될 수 있다. )
9월말-10월초 10월의 축제 (Oktoberfest ). Fruhlingsfest 와 비슷하지만 이번에는 가을 햇살을 즐기
는 사람들로 야외술집(?)- Bier Garten 이 가득찬다. Muenchen 의 Biergarten이 유명하며, 규모도 가
장크다.
10월 3일. 독일 통일 기념일.
10월31일. 종교개혁 기념일(브란덴부르크, 작센, 튀링겐 주)
11월 1일. 모든 성일 축일 (주로 남부지방)
11월 중순. 참회와 기도의 날 /
와인축제 [ Besenwirtschaft ] - 포도농장(Wein)을 하는 집안에서 1년에 한 두번 정도 음식점처럼 와인과 음식을 판매하는 기간이다. 특징은 와인이 강조된 축제라는 것인데, 포도주 통을 비우고 햇술을 담기위해 통(Fass) 에서 바로 공급하며, 여러가지 와인을 시음해 보고 비교적 저렴한 가격에 좋은 품질을 구입할 수 있다. 선물로 좋다 ! 햇술을 맛볼 수도 있고, 그 지방 전통 음식을 사 먹을 수도 있다. 매년 이곳에 오는 사람들은 거의 고정적이어서, 일종의 Club 처럼 사람들이 서로 친해져서 먹고, 마시고 노래하며 즐기는 분위기가 무척 화기애애한 곳이다. 레스토랑같이 꾸민 장소는 일부러 자리를 좁게 만들었다는데, 사람들을 다닥다닥 붙여 앉혀서 친밀감을 높이기 위함이라고 한다. 이런 와인축제뿐 아니라 여러가지 맥주만을 제공하는 모임도 있다고 한다. 독일문화를 피부로 체험할 수 있는 독특한 시간이 될 것이다.
12 월이 되면 어느 도시에서나, 무르익는 성탄 분위기에 공연한(?) 설레임을 갖게한다. 거리 곳곳에는트리와 반짝이는 전구들. 특별세일을 내건 상품들이 가득하다. 도시 광장에는 아름다운 크리스마스 시장이 들어서고, 갖가지 아름다운 장식품과 양초, 이 시장에서만 맛볼 수 있는 Gluh-Wein (뜨겁게 데운붉은 와인) 과 Rot-Wurst (붉은 쏘세지), Weiss-wurst(흰 쏘세지) 의 진동하는 향기가 사람들을 잡아끈다. 간간이 거리에선 (여러나라에서 온) 아카펠라 팀들의 아름다운 합창을 들을 수 있으며, 멋진차림의 목사님들이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기도 한다.
유럽에서 가장 아름답고 규모가 크다는 크리스마스 시장은, Stuttgart 시의 것이며 , 가장 오랜 역사를가진 것은 Nuernberg 의 것이라고 한다. Dresden 의 크리스마스시장도 그 규모와 전통으로 유명하다.
12월 25일 26일 성탄절(Weinachten) 우리나라의 설날이나 추석처럼 흩어져있던 온 가족이 모여 잠시 교회 다녀오고( 어쩜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 날만 교회에 나가는지 모르겠다. 평소에 한산하던 예배당이 미어 터진다 ! ) 집에서 크리스마스 트리 주위로 놓은 서로를 위한 선물을 뜯으며 얘기하며 게임도하고, 즐거운 시간을 갖는다.
박물관 : 박물관은 대개 월요일에는 휴관한다. 개관시간은 박물관마다 다르며, 특히 사설 박물관인 경우에는 더욱 그렇다. 국영 및 시영 박물관은 대개 오전 9시에서 오후 5시까지 개관한다.
영화관 : 독일의 영화관은 일정한 날, 혹은 시간대에 독일어 자막과 함께 원어로 영화를 상영하며 그 외에는 모두 독어로 더빙되어 상영된다. 원어 상영은 (O.M.U.)라고 표시된다. 지역마다 다르지만, 대개 화요일이 Kinotag이라 하여 가장 싸게 영화를 볼 수 있고, 주말에는 Zuschlag (추가비용)이 붙는다.
생활중에 여가 :
여가 생활을 위하여 대학의 스포츠 분과나 A.A.A에서 종종 제공하는 레크레이션 시간을 권장해주고 싶다. A.A.A에서 개최하는 행사는 특별히 외국학생들을 위한 것이기 때문에, 처지가 비슷한 외국 친구들을 많이 사귈 수 있는 기회가 되며, 매우 저렴한 가격으로 그 도시와 대학에 대한 Orientation이나 지역특색을 둘러볼 수 있는 견학(Exkursion) , 관광이 주된 Programm이기 때문에 무척 유익하다. 종종Garden Party나 모임의 자리를 마련하고 있으니(이것이 그들의 업무다 !) 적극 활용하기를 바란다.
여러 친구들을 만날 수 있는 시발점이 될 것이다.
스포츠 : 독일의 어느 작은 도시라도 대부분 축구장, 수영자으 테니스장, 스포츠 센터나 실내 체육관이 갖추어져 있다. 도심지의 공원과 산책길, 승마장, Camping 장, Jugend Herbergen (Youth hostel) 등을 찾아보자. 지역마다 휴양시설이 Wohn Wagen(Camping car)를 위한 시설도 잘 되어 있을 것이다.
그 외에
Musikkonservatorium (음악학교) 에서는 저렴한 가격으로 배우고 싶은 악기나 음악을 배울 수 있는기회가 있고, 도시내의 사립의 문화센터들도 나 Volkhochschule, 또는 등이 있는데, 우리나라의 백화점에서 제공하는 문화센터나 YMCA등을 연상하면 된다. 영화, 음악, 스포츠 분야에서의 다채로운 문화행사와 서클활동, 레크레이션 프로그램과 강좌가 제공된다.
그리고 학교에서 여는 파티들, 기숙사 파티, 생일 파티, 할로윈 등등, (특별히 어학을 하고 있다면) 이런파티에 빠지지 말고 열심히 그들과 함께 시간을 가질 것을 권하고 싶다.
몇몇 종교단체들이 운영하는 기숙사들도 있는데, 이런 기숙사에서는 다양한 세미나도 펼쳐지며, 독일학생들과 만남의 시간을 갖기도 좋다. 신문, 주간지, 월간지의 간행물이나, info center, 학교식당, 매점 등에 놓여있는 문화행사 팜플렛에서 정보를 얻을 수 있다.
한인생활
끈끈하게 모이기를 좋아하는 우리나라 사람들은 독일 와서도 예외없다. 그렇다고 Korean town이 있는것은 아니지만, 각종 교파의 교회의 모임들, 영남회, XX동창회 , XX 한인회, XX한인 테니스회 등등의모임들도 제법 다양하다.
2만 남짓 되는 우리네 교포들은 주로 70년대에 건너온 분들이시다. 당시엔 "간호사" 나 "광산일"로 온분들이 많다. 20년 30년을 독일에 살아왔어도, 미국이나 캐나다와는 분위기 다른 독일이기에, 여전히 "타향"에 살고있는 느낌으로 사는 분들이 많다. 그러면서도 국내가 불편하다는 아이러니를 안고 살아가시는 듯 하다. 필자의 어머니도 간호사로 파견되어 수간호사까지 지내셨다.
이곳에서 아직 중요한 역할을 하는 이들이 참 많은 것 같다.
출처: egal
& 교통
"아우토반"이다. 이것은 특정한 구간을 가리키는 도로가 아니라 11,000 km 에 달하여 각 도시를 거미줄처럼 연결하는 -속도 무제한의-"고속도로"라는 일반명사다. 요즘은 사고의 증가로 인한 인명손실과 교통체증이 커다란 문제가 되어 속도제한을 두는 고속도로가 늘었지만, 역시 누구나 한번쯤 이 도로를 타고 "무제한"의 스피드를 만끽하고 싶어할 것이다. 그 시원한 매력 때문에, 우리나라의 경부고속도로가 구상되었다고 하는 얘기는 달리면서 한번쯤 생각해볼만 하다.
도시와 도시를 200km/시 이상의 초고속으로 연결하는 ICE(Inter City Express ; 도시간 초특급 급행열차)를 비롯하여....
한편 도시에서는, 자가용이 "짐"이 될 정도로, 공공쿄통망이 잘 구성되어 있는 것이 독일의 교통체계이다.
버스(Bus), 전차.(U-Bahn), 지하철(S-Bahn) 또는 모노레일같은 수단들이 도시 내에서 하나의 "교통국"(Verkehrsamt)를 이루어 일관된 요금체계에 따라 연결된다.
여기서는 대표적으로 도심의 공공교통과 기차, 자동차의 이용을 살펴보겠다.
공공교통 요금체계는 매번 탈때마다 요금을 내야하는 우리의 그것과 다르다. 목적지까지 어떤 수단을 이용하든지 Zone(도심으로부터 동심원의 거리상으로 구획된 구역) 에 따라 한 번만 요금을 내도록 되어있다. 버스회사와 지하철, 전차 등이 하나의 조합을 이루고 있기 때문이다. 이 교통국에서는 이용하는 시민들에게 최대한 합리적인 요금을 징수하기 위해, 정기적인 이동구간대별, 시간대별, 연령별, 직업별, 가족별 또는 "부부형" 같은 제도들을 마련하고 있다. 물론 제한사항들이 표에 명시되며 이를 위반한 경우는 표가 없는 경우와 마찬가지로 취급된다. 학생들에게는 Semester Karte 가 가장 적합할 것이다. 요금은 한 번을 이용하더라도 현금이 아닌"표"를 이용하며 각 정거장마다 또는 버스,전차 내에 설치된 기계에 출발장소와 시간이 표시되는 Punching 또는 Stamping을 스스로 하여야 한다. 곧 요금 수수를 양심에 맡긴다는 말이다.
운전면허증
한국의 운전면허증을 가지고 와서 이곳에서 바로 바꿀수 있다. 관할구청 운전면허 발급청 (Fahrscheinstelle/ Verkehrsamt, 또는 거주신고를 했던 Melldestelle)에서 발급받는데,
면허 신청서 / 본국 자동차 면허증과 그 공증 번역서 / 체류 증명서(VISA) / 시력검사증 (안경점 / 안과에서) / 여권 / 명함사진 2매 / 약 70 DM의 수수료 / 을 준비해 가야 된다.
번역본은 한국영사관에서 해준다. 그러나 6개월 이상 거주 증명이 되어야 한다.
운전면허증과 공증 수수료 10 DM(지폐1장). 반송용 우표(3DM정도)를 보내면 소정양식의 서류를 보내준다. 면허 신청 후 1달 정도 후에 발급된다. 들어가는 총비용은 100 DM정도.
물론 국제 면허증으로도 운전은 가능하다. 국제 운전 면허증은 상호주의 원칙에 의거 각국이 1년간 그 효력을 인정해 주고 있어, 1년간 운전을 할 수 있다. 그러므로 독일에 1년이상 체류시 독일 면허증으로 변경하는 것이 좋다.
독일에서 운전면허증을 따는 것은, 까다롭기를 둘째 하고서라도 (필기시험부터가 100점 만점에 92점이상) , 약 40분간의 주행시험중 조금만 잘못해도 "불합격" 인 꼴 ! 한 번 주행 응시료는 120DM. 최소한 2500DM 이상 되는 엄청난 수강비를 들여야 가능하기 때문에, (외화절약 -애국하는 마음으로) 한국에서 따오는 것이 "훨" 현명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자동차
새차를 사면 16%의 부가가치세가 할인된다. 보험료와 유지비가 많이 든다. (1년에 약 6000DM-물론 차종에 따라 다르지만) 새차를 구입할 경우 PASSAT 나 GOLF 가 감가상각이 가장 적다고 한다. 최근엔 국산차도 많이 보급되고 있으며, DEALER 가 많아 A/S받기도 쉽다.
새 자동차 등록
여권 (체류허가 직인필) / 보험증명서 / 소유증명서 (판매자 싸인필) / 시청으로부터의 등록증 (직인필) 을 거주지역 청(AMT)에 낸다.
중고 자동차 등록
대부분 구매자가 알아서 행정적인 절차를 대신해주며, 그 후 새 차 등록의 언급된 사항과 함께 자동차 검사소에 소정형식을 제출한다. 직접적으로 판매자를 통하여 구입할 시 그가 요구하는 서류들을 준비해야한다.
자동차 세금
1년에 한 번 씩 자동차에 부여되는 도로세. 자동차 등록시 수행된다. 세금은 통장에서 규칙적으로 또는 관할 세무서에 내게 되어있다. 보통 세금은 240DM 이나 환경을 고려하여 정화기가 없는 경우 2배 이상의 무거운 세금이 부여된다.
자동차 검사
새 차의 경우 3년마다, 그 외에는 2년마다 검사받게 되어있다. 자동차에 관한 서류를 가지고 자동차관서(Zulassunfstelle)에 가서 검사를 받는다. 검사에 불합격하면 상당한 불이익을 당하므로 미리 정비소에 가서 검사를 받을만한지 "검사를 위한 검사"를 의뢰하는 것이 보통이다.
고 장 / 사 고
독일의 고속도로는 약 1km 마다 비상전화기가 설치되어 있다. 뚜껑을 열면, 바로 고속도로 순찰대와 연결이 되는데, 고장이면 Panne, 사고일 경우 Unfall 이라고 대답한다. 경비소에서 위치를 인지하면 경찰이나 독일의 최대 자동차 클럽인 ADAC차량을 보내준다. 회원일 경우 수리는 무료이고 재료값만 받는다. 고장당시 회원이 아닐 경우라도 그 자리에서 회원가입을 할 수 있도록 배려(?)해준다. 사고시에는 원칙적으로 경찰이 올 때까지 사고상태대로 놔두어야 한다. 가벼운 사고일 경우, 다른 사람에게 너무 미안하다 싶으면, 반드시 사인을 해주거나 받고-과실인정에 대한- 위치를 옮기도록 한다. 경찰은 사고상황을 Reporting 할 뿐 그 자리에서 판정하지 않는다.
( ADAC Allgemeiner Deutscher Automobil Club / Tel : 01805-101112 )
운 전
교통 표지판은 국제공용 표시들과 대체로 일치한다. 시가지에서는 50km, 주거지역은 시속 30km로 속도를 제한하며 곳곳에 카메라가 교묘히 숨겨져 있으므로 (특히 터널 안!) 싫어도 법을 지키도록 하자- 걸리면 벌금이 장난아님 ! 그러나 역시 좋은 게(?) 있다면, 독일 곳곳에 거미줄처럼 뻗은, 속도 무제한의 고속도로 망- Autobahn 이다. 130km가 권장 속도라는데, 그 정도면 1차선에서 기어 가야한다고 싶을 정도로 무섭게 달리는 차들이 많다.
여기서 사고나면 그냥 다치는 일이 거의 없을 듯 싶다. "죽음"이야 !
사고로 인한 인명피해 때문에 요즘은 속도규제를 하자는 논쟁이 많다.
주차할 때에도 반드시 주차장소와 주차료와 주차시간에 신경을 쓰도록.
할 일 없어(?) 심심해하는 경찰들이 자를 들고 다닌다. "차를 바짝 붙였나 ?" 하면서...
주유소 이용
기름은 스스로 (self) 넣는다. 고속도로변의 주유소는 시내나 간선도로의 것보다 비싸다.
또한 대기업보다 개인이 운영하는 주유소가 더 싼 경우가 많다.
기차여행 > 공사중
& 아르바이트
독일내에서 학기중에 아르바이트는 법률상 불가능하다. 유학비자로서는 독일에서 취업할 수 있는 권한이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 학교 조교로 일하는 것이나 비공식적으로 일하는 것(공식적으로 주당 5시간 제한)들 ; 예를들어 이삿짐을 나르는 일 등의 하루벌이, 아기나 강아지를 맡아주는 일, 집안일 도와주는 것, 피아노 등의 악기 개인교습을 해 주는 것들을 할 수 있으며, 방학중에는 공장에서 일하는 정식 아르바이트(Erwerbstatigkeit : 소득행위) 가 가능하다. 이것도 1년에 90일로 제한하고 있으며, 학생신분이 되어야 가능하다.
여권-체류 허가서에 명시되어 있다. 그러나 아르바이트로 학비를 충당하려는 계획은 세우지 않는 것이 좋다. 시험은 방학기간 중에 있다는 것을 명심하자. (은근히 "돈맛" 들어 학업을 손놓은 어리석은 사례도 종종있다.)
아르바이트를 하려면 세무서(Finanzamt)에서 세금증서( Lohnsteuerkarte)를 발급 받아야한다.
학생은 일정한도(예 1만 DM/ 년) 에서 세금이 공제되는데, 년말에 세금을 되돌려 받는 신청을 해야한다.
통독이후 일자리 구하기가 만만치 않다.
학교에 직업소개소 (Studentische Arbeitsvermittlung )도 찾아가보고, Zettel (메모) 붙어있는 곳에서 뒤져가며 Hiwi Arbeit (학교의 조교/비서- 우리나라에 비해 굉장히 많이 뽑는다. )나 집안일 - 앞서말한 이삿짐,정원정리, 개 봐주기, 청소, 유리창청소-이상하게 청소부들도 하기 싫어하는 일이란다. -, 컴퓨터나 악기 개인교습 등- 도와달라는 곳에 전화를 걸어본다.
운이 좋으면 하루벌이로선 괜찮은 용돈을 벌 수 있다. 나도 한 번 이삿짐을 반나절 날랐는데, 200 DM 이나 받았다 ! 멋진 주인을 만나야 한다 !! 그런곳엔 분명 소문을 듣고 온 중국 친구들도 만나볼 수 있을 것이다.
학생으로서 악기 과외교습은 25-35 DM. Benz, Bosch, Siemens, VW 등의 공장은 방학시기에 맞춰 정식직원들을 휴가보내는데, 이 시간동안 (그들보다는 싼 노동력인) 학생들에게 일할 기회를 주는 것이다. 이런 일은 20DM-30DM /시 정도로 보수가 높으며 하고자하는 사람들이 늘 줄지어 서 있게 마련이므로 2-3달 많게는 1년 전부터 "찜해두기" 지원경쟁이 생긴다. 그러나 다시 말하지만, 아르바이트로 유학비를 충당하려는 계획은 세우지 말자. 그저 여행비나 용돈정도로 생각하는 것이 좋다.
& 잡비들
TV, Radio 수신료, 전화세 정도다.
그러나 학생신분이라면 이것도 면제 또는 할인 받을 수 있다.
Sozial Befreiung 에 대하여 ;
독일은 방송수신료로 월에 TV,Radio로 들어가야 하는 돈이 20DM 정도나 된다. 많은 사람들이 이를 무시하긴 하나, 외국인을 상대로 검사원이 자주 뜨기 때문에 걸리지 않도록 해야겠다 ! 걸리면 1000DM 벌금. 그래서 한국인들은 걸렸다 하면, "이거 어제 산 거" 라고 한다 !
불법을 행하라는 얘기가 아니라 미리미리 대비하도록.
정당하게 돈 안내는 방법은 있다 - 월에 1000 DM 정도를 송금받아 생활하고 있다면.
Sozial Befreiung이라는 것은 저소득층을 위하여 방송 수신료를 공제해주는 제도. Sozial Amt를 찾아가서 소금받는 액수가 적힌 Konto Auszug (통장)을 보여주고 신청한다. 또한 전화국에 이 증서를 보여주고 전화를 신청하면 기본료(약 25DM/월)를 반값 할인 받을 수 있다.
여가활용
이 장은, 말그대로 "숨 좀 돌려보기"위해서 만련해 보았다.
출입국 수속에, 잘 되지도 않는(?) 말로 관공서 일 보느라 얼마나 답답 했을까 ?
이제 "쉼"을 누릴 여유도 낼 줄 알아야겠다. 멋진 곳에 가서 맛진 음식을 먹고, 스포츠를 즐기며 여가를 활용하자.
사람들과 어울려 어디론가 견학을 가도 좋겠고, 축제에 참여하거나 Bier Garten 에 가서 맥주를 들이키며 낭만스런 오후를 보낼수도 있다. 도심지에서 행해지는 각종 공연들, 주말에 북적대는 Night, 기숙사의 Party 들...
아니면 홀로 조용히, 공동묘지(공원)를 산책하거나 도서관에 가서 책을 벗해도 좋겠다.
딱딱한 독일말이 실증나면, 한 주말을 잡아 이웃나라 탐방을 가도 좋은 일 ! 가능성은 많다. 내가 2년간 경험하고 찾아다닌 재미거리들이 이 정도라면, 나머지는 여러분이 누리기 나름일 것이다.
먼저 먹거리들을 보자.
물론 프랑스 요리가 유명하다지만, 독일의 맥주, 와인, 치즈, 빵, 그리고 소세지같은 가공육류 등은 세계적으로 유명한 아이템 들이다. 남부지방 특유의 요리또한 다채롭다.
레스토랑에서 흔히 접할 수 있는 대표적인 요리들은 다음과 같다.
슈니첼 (Schnitzel) 얇게 썬 고기의 독일풍 커틀릿 (Schweine Haxe) 돼지 정강이고기 구이 (족발요리의 일종) (Schweine Braten) 돼지고기 로스트 (Sauerbraten) 절임 쇠고기 로스트
맥주
뮌헨을 중심으로 한 바이에른 지방, 북쪽 함부르크, 도르트문트가 3대 산지로 유명하다.
9월이 되면, Oktober Fest라는 맥주축제가 전국 곳곳에서 열리는데, 뮌헨에서 그 규모가 가장 크다.
대표적인 맥주로는 -
필스너(Pilsner) 거품이 부드럽고 짜릿한 맛
쾰쉬(Koelsch) 황색의 옅은 빛깔로 산뜻한 맛
둔켈(Dunkel) 흑맥주. 알콜도수가 높은 편이며, 걸쭉한 느낌이다.
메를리너와이제(Berliner Weisse) 신맛이 있는 맥주
라우흐비어(Rauchbier) 다갈색의 쓴 맛.
*독일은 포도재배의 북한계지이다. 미네랄이 천천히 흡수된 포도에서 생산된 와인은 고귀한 향을 자랑한다. 생산량의 80%이상이 백포도주이다. 10-11월 사이에 주로 남부지방에서는 Besenwirtschaft 라는 와인축제(?)가 열린다. ("축제" 설명참고)
대표적인 지역와인으로는 -
라인와인 - 부드러운 리스링 배포도주가 고급상품이다.
모젤와인 - 신선하고 산뜻한 맛의 와인
바덴와인 - 프라이부르크, 바덴바덴에서 생산된다.
프랑켄 와인 - 맛이 진한 남성적 취향의 와인.
와인 등급에 관하여 -
와인의 격은 포도를 따는 방법과 수확시기에 따라 달라진다.
카비네트(Kabinett) - 제철(10월)에 충분히 익은 포도로 만들어진 고급스러운 와인.
슈페트레제(Spatlese) - 제철보다 조금 늦게 딴 포도로 만들어 신선하고 산뜻한 맛의 상급와인.
아우스레제(Auslese) - 완전히 익은 포도로 만든 와인, 맛과 향이 진하다.
베어렌 아우스레제(Beernauslese) - 건포도 상태의 포도알을 골라내 만든 맛과 향이 좋은 최상급의 와인.
"놀거리" 와 "볼거리"
* 공휴일은 기차역과 중앙광장 부근을 제외하고는 대부분의 은행과 상점이 휴업을 한다.
1월 1일. 아니 12월 31일 저녁부터 온 도시에 축포소리가 가득하다.
0시 일제히 교회종소리가 나기 시작하면 화려한 불꽃놀이는 절정이 된다. 남녀노소 할 것 없이 이 날엔 누구나 폭약 하나씩을 들고 액운을 쫓는 날 ! 화약을 겁나게 뿌려댄다. 물론 사고도 많이 난다.
1월 5일 노동자의 날 (Tag dert Arbeit)
1월6일 예수 공현축일 Heilige Koenige (Bayern 주(n¶)와 Baden-Wuertemnerg주).
Fasching 또는 Karnival (주로 남부지방. 특히 Koeln에서 성대하게 펼쳐진다. )
유동적이나 3월 말-4월 중순중에 해마다 지키는 - 예수 그리스도의 수난 금요일, 부활주일(Ostern) 및 월요일 (학교도 한 주 쉰다 ),
3월 말 - 4월 중 봄 축제 (Fruhlingsfest ) . 광장에는 놀이기구와 야외 맥주 Garden 이 열리고, 함께나온 가족들은 봄의 따사한 햇빛을 마음껏 즐긴다.
5월 중 - Muttertag 어머니의 날 / kindertag 어린이 날. 하지만 어버이 날이나 스승의 날은 따로 없고, 아버지의 날 (Vatertag)은 조금 다른 의미. 남자가 홀로 "고독을 씹는 날"이라나 !
5월 하순 성령 강림주일(Pfingstern), 성모 승천축일(Bayern, Saarland 주)
8월중순 - 성모 승천축일 (Bayern, Saarland 주)
5월-9월 쾰른의 여름축제 - 라인공원이나 사저의 튼 정원에서 음악회, 연극, 전시회 등의 많은 공연들이 펼쳐지는 낭만적인 여름축제가 계속된다.
Bonn 의 여름축제- 베토벤의 고향인 본의 문화축제로서 거의 모든 광장, 주요 장소에서 펼쳐진다.
9월 중순- 뉘른베르크의 구시가 축제 - 독일에서 가장 큰 음악축제이자 민속축제
9월말-10월초 10월의 축제 (Oktoberfest ). Fruhlingsfest 와 비슷하지만 이번에는 가을 햇살을 즐기는 사람들로 야외술집(?)- Bier Garten 이 가득찬다. Muenchen 의 Biergarten이 유명하며, 규모도 가장크다.
한편, 이 시기에 베를린에서는 1951년부터 시작된 문화축제가 열린다. 오페라,심포니,영화, 전시회,합창 등 다채로운 행사들로 가득하다.
10월 3일 독일 통일 기념일.
10월31일 종교개혁 기념일(브란덴부르크, 작센, 튀링겐 주)
11월 1일 - 모든 성일 축일 (주로 남부지방)
11월 중순 참회와 기도의 날
와인축제 [ Besenwirtschaft ] - 포도농장(Wein)을 하는 집안에서 1년에 한 두번 정도 음식점처럼 와인과 음식을 판매하는 기간이다. 특징은 와인이 강조된 축제라는 것인데, 포도주 통을 비우고 햇술을 담기위해 통(Fass) 에서 바로 공급하며, 여러가지 와인을 시음해 보고 비교적 저렴한 가격에 좋은 품질을 구입할 수 있다. 선물로 좋다 !
햇술을 맛볼 수도 있고, 그 지방 전통 음식을 사 먹을 수도 있다. 매년 이곳에 오는 사람들은 거의 고정적이어서, 일종의 Club 처럼 사람들이 서로 친해져서 먹고, 마시고 노래하며 즐기는 분위기가 무척 화기애애한 곳이다. 레스토랑같이 꾸민 장소는 일부러 자리를 좁게 만들었다는데, 사람들을 다닥다닥 붙여 앉혀서 친밀감을 높이기 위함이라고 한다. 이런 와인축제뿐 아니라 여러가지 맥주만을 제공하는 모임도 있다고 한다. 독일문화를 피부로 체험할 수 있는 독특한 시간이 될 것이다.
12 월이 되면 어느 도시에서나, 무르익는 성탄 분위기에 공연한(?) 설레임을 갖게한다. 거리 곳곳에는 트리와 반짝이는 전구들. 특별세일을 내건 상품들이 가득하다. 도시 광장에는 아름다운 크리스마스 시장이 들어서고, 갖가지 아름다운 장식품과 양초, 이 시장에서만 맛볼 수 있는 Gluh-Wein (뜨겁게 데운 붉은 와인) 과 Rot-Wurst (붉은 쏘세지), Weiss-wurst(흰 쏘세지) 의 진동하는 향기가 사람들을 잡아끈다. 간간이 거리에선 (여러나라에서 온) 아카펠라 팀들의 아름다운 합창을 들을 수 있으며, 멋진차림의 목사님들이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기도 한다.
유럽에서 가장 아름답고 규모가 크다는 크리스마스 시장은, Stuttgart 시(내가 태어났고 유학하던 곳!) 의 것이며 , 가장 오랜 역사를 가진 것은 Nuernberg 의 것이라고 한다.
12월 25일 26일 성탄절(Weinachten) 우리나라의 설날이나 추석처럼 흩어져있던 온 가족이 모여 잠시 교회 다녀오고( 어쩜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 날만 교회에 나가는지 모르겠다. 평소에 한산하던 예배당이 미어 터진다 ! ) 집에서 크리스마스 트리 주위로 놓은 서로를 위한 선물을 뜯으며 얘기하며 게임도 하고, 즐거운 시간을 갖는다.
가을은 대규모 축제의 계절이다. 가장 유명한 포도주 축제는 9월의 둘 째, 셋째 주말에 열리는 뒤르크하임 소시지 시장이다. 뮌헨의 Oktoberfest (10월 축제)는 잔치를 좋아하는 독일인의 흥취를 대변하는 말이 되었다. 이 축제는 항상 9월 둘째 토요일부터 10월 첫 째 일요일까지 계속된다. 이와 견줓만한 것으로 슈투트가르트에서 열리는 축제가 유명하다. 10월 중순에서 말까지 열리는 브레멘 축제에서는 어디에도 한자동맹의 딱딱함을 찾아볼 수 없다.
행렬 : 대부분의 주민이 가톨릭 신자인 남부 독일에는 바로크 시대의 신심표현인 성체거동행사 (성령강림절 열흘 후 그리도의 성체성혈축일에 거행) 가 아직도 실시된다. 특히 밤베르크와 뮌헨의 성체거동행사와 보덴세 호구(Rodolfszell)의 보트행렬, 쾰른의 라인강 행사가 가장 유명하다.
박물관 : 박물관은 대개 월요일에는 휴관한다. 개관시간은 박물관마다 다르며, 특히 사설 박물관인 경우에는 더욱 그렇다. 국영 및 시영 박물관은 대개 오전 9시에서 오후 5시까지 개관한다.
문화행사
연극 및 음악회 :
레퍼토리 연극무대와 상설 오케스트라는 폭넓은 초청공연을 통해 체계를 보완하고 있기 때문에 중소도시 팬들에게도 오페라, 연극, 음악회의 다양한 프로그램을 제공한다. 연극과 음악회 예약제가 정착되어 있어서 임장권을 항상 쉽게 구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입장권은 극장 매표소에서 공연2주 혹은 10일 전부터 직접 판매한다. 음악회의 입장권은 대개 신문이나 공공게시판의 관고에 적힌 매표소에서 적어도 4주 전에 예매를 해야하며 이럴 경우 추가 비용을 지불한다. 규모가 큰 여행사에는 대개 예매소도 갖투고 있지만, 추가 비용을 부과한다. 입장권은 공연이 있기 한 시간 전 바로 공연장에서 판매된다. 입장권을 구하는 데는 호텔 포터들이 도움이 될 수 있다.
영화관 : 독일의 영화관은 일정한 날, 혹은 시간대에 독일어 자막과 함께 원어로 영화를 상영하며 그 외에는 모두 독어로 더빙되어 상영된다. 원어 상영은 (O.M.U.)라고 표시된다.
종교생활
끈끈하게 모이기를 좋아하는 우리나라 사람들은 독일와서도 예외없다. 2만 남짓되는 우리네 교포들은 주로 70년대에 건너온 분들이시다. 당시엔 "간호원"이나 "광부"로 온 숫자가 많은데, 20년 30년을 독일에 살아와도, 미국이나 캐나다와는 그 국민성이 다른 독일이기에, 여전히 "이방인"으로서, 그러나 타향에 살아야만 하는- 국내에 돌아오면 더 살기 어렵다고들 한다. - 고민들이 있단다.
내 어머니도 간호사로 파견되어 수간호사까지 지내셨단다. 아직도 중요한 역할을 하는 이들이 참 많은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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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살림살이
도시 규모에 따라서, 자신의 선택에 따라서, 또 공부하는 과목의 특성에 따라 많이 다르지만, (차 없이 혼자사는 유학생이라면) 한달에 일반적으로 1200 -1400DM을 쓴다고 보면 무난하다. 독일대사관이나 관청, 대부분의 학교에서는 월에 1000 -1200 DM 정도 송금을 받고 있는 지, 확인을 요구한다. 하지만 2500 DM을 쓰고도 모자르는 이가 있는가 하면, 어떤 부부는 둘이서 1000DM 만으로도 훌륭하고 야무지게(?) 살아가는 것을 보았다. 도시에 따라 큰 차이가 나는 "교통비와 집세"외에는, 역시 살림의 지혜이며, 개인의 취향에 따른 차이다.
음대생의 경우 평균적으로 한 학기당 책값은 4-500 DM , 악보 구입비는 100-150 DM, 학생이 되기 까지 레슨비, 연습실 렌트비등이 추가될 수 있다. 건축과, 미대생의 경우 실습 재료비도 만만치 않을 것이다.
# 알뜰살림을위한 8계명
1. 가능하면 기숙사에서 산다.
2. 쇼핑은 규칙적으로, 가계부를 써가며, 각 쇼핑센터의 특성을 익혀서, 품목별로 좋은 상품을
저렴한 가격에 구입할 수 있도록.
3. 세일기간을 유용하게 이용하며, Flohr Markt나 Sozial Markt 등을 산책삼아 거닐어 본다.
4. 쓰레기도 마다하지 않는다. ! - 버리는 물건이라고 다 더러운 것은 아니다. !
5. 아프지 말자. 아프면 혼자고생 ! 밥 잘 해먹고, 건강에 유의하자. 여성들은 자기 몸을 잘 챙기는데, 남성들은 비교적 오랜 시간 고생을 하고 나서야 밥을 잘 챙겨먹는 버릇(?)이 있다.
* 고생고생해서 공부를 마친 사람이 귀국하여 "괴사"(?)당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주로 위장병을 키워온 사람들이다. 얼마나 안타까운 일인지...
6. 아프면 병원을 찾는다. 정기적으로 검사를 받을 담당의사도 선택할 수 있고, 기본적인 비용이 보험에서 처리되기 때문에 약값도 안 든다. 굳이 감기정도야 하고 참을 필요가 없는 것이다. 독일의 저기압이나 나쁜 날씨에는 누구나 면역이 약해지기 마련이다.
그러니. 체면을 내세우지 말고 아플때는 병원을 찾을 것 !
7. A.A.A. 이나 "한인회"의 친목을 통해서 여러 가지 정보를 얻도록 하자. 여행을 한 번 가더라도
A.A.A.에서 가는 것은, 비용도 아주 저렴하고 유익하다. 또래의 외국 친구들도 많이 사귈 수 있다.
8. 자녀가 있을 때는, 시의 복지과(Sozial Amt)에 가서 자녀수당 (KinderGeld)에 대해서도
알아보아라.
& 은행통장에 대하여
은행구좌를 개설한다. Sparkasse(Landesgirokasse, Stadtsparkasse, Kreissparkasse 따위), Deutsch Bank, Post Bank, City Bank 등이 거의 매 도시마다 있다. 여권과 비자 (거주지 시청에 등록이 된), 체류 근거인 "학생증"이나 "어학등록증" 등을 첨부하여 은행을 찾아가자. 새 구좌를 여는 데 예금구좌 (Spar Konto) 의 경우 구좌 사용료를 내며, 유학생들은 대개 사용료를 물지 않는 거래구좌(Giro Konto)를 이용한다.
은행거래구좌는 돈을 주고받기 위해 유용한 것이며, 예금 구좌는 일정한도 이상의 예금에 이자가 붙어 예금할 때 유리하다는 차이다. 은행구좌를 개설한 후 은행이름과 주소, (전화번호), 구좌번호(Konto Nummer) 와 은행코드(Bankleitzahl=BLZ) 그리고 수금자 영문이름을 송금할 사람에게 알려주도록 한다. 정기적으로 송금 받기를 원할때는 여권과 학생증 복사본을 매 학기 1회 제출해야한다. 이런 제도는 점점 간소화되는 추세이니 각 은행에 알아보도록 하자.
(예를들어 City bank의 현금카드로는 한국지점에서 원화로 송금할 때, 독일에서 바로 마르크로 인출 가능한 시스템을 잘 갖추고 있다고 한다.)
얘네 은행들은 우리나라처럼 입출 내역이 간편하게 통장책(?)에 찍혀나오지 않고, 매 번 낱장으로 나온다. 이를 Kontoauszug 이라고 하는 데, 그것을 한 장 한 장 일일이 통장 file에 철해두어야 한다. 시청에서 재정 증빙자료로 쓰이므로 버리지 않도록 한다.
느린 업무처리를 고려하라. 철저하게 해서 그런지는 몰라도 Konto 하나를 열고 새 카드를 발급 받기까지 무려 2주-한 달이 걸린다. 물론 구좌를 개설하자마자 사용할 수는 있어도 카드발급이 느린 편이다. 대신, 확실히 믿을 수는 있다. 비밀번호는 자기 자신밖에(은행직원도 모른다) 알 수 없으므로 잃어버리면 다시 기다려야하는 식이니까 ! 국내에서 송금할 때에는 보통 일주일-보름정도의 시간과 25-30DM 정도의 수수료를 생각하면 되지만, Internet Home Banking 으로 점차 동시화되고 저렴화되는 추세다.
카드는 크게 직불카드와 일반 카드의 두 종류. 직불카드는 슈퍼마켓이나 대부분의 옷가게 등에서 사용할 수 있어 편리하다. 하지만, 분실하면 "신고해서 차단되기까지" 도둑님도 편리하게 사용해 줄 것이다 !
구좌 개설에 있어서 몇 가지 귀찮은 내용들이 있기 때문에 아는 사람 도움을 받을 수 있으면 좋겠다.
& 생필품 구입(장보기)
처음엔 당장 생활에 필요한 것이 많다. 생각보다 많다.
음식물부터 냄비, 후라이팬, 컵, 수저 등의 주방용품들, -수도물에서 석회질을 없애주는 -(브리타)정수기, 이불, 스탠드, TV 전자제품 등등... 계획을 잘 세우고 구입하도록 한다.
자주 나가서 쇼핑감각(?)을 익혀보는 것이 중요하다. 가게마다 특색이 뚜렷하기 때문이다.
쇼핑장소의 종류에 대해 살표보면 선택이 조금은 쉬울 것이다.
& 장보기
시장의 형태 / 종류
우리가 식품을 구입할 수 있는 곳으로는 크게 백화점(Kaufhaus), 쇼핑센터(Einkaufszentrum), 슈퍼마켓(Supermarkt), Wochenmarkt(주말시장), 벼룩시장(Flohmarkt), 건강식품점 (Reformhaus) 등으로 볼 수 있다.
백화점 (Kaufhaus) 또는 쇼핑센터 (Einkaufszentrum)
싸게 "세일"을 한다고 해도, 다른 상점에서 본 같은 물건이 여기선 비싸게 마련이다. 그러나 비싼만큼 주로 상급의 제품들을 다룬다.
슈퍼마켓
아무리 작은 마을이라도 하나의 슈퍼마켓 정도는 있는데, HL, NORMAN, ALDI ( 채소/과일류가 좋음), Pennymarkt (가공 식품들이 싸다), EXTRA, LIDL 등이 그 예이다. 같은 종류의 물건이라도 가격과 품질에 조금씩 조금씩 차이가 있어, 채소는 어디, 통조림은 어디, 빵은 어디 하는 식으로 주말 전에는 여기저기 쇼핑을 즐기는 많은 사람들을 볼 수 있다.
실내시장 ( Kleinmarkthal ) 과 주말야외시장 ( Wochenmarkt )
하나의 작은 농수산물 시장이다. 조그만 상점들이 모여있고, 신선한 자연생산물 -고기, 생선, 야채, 과일, 계란 등- 을 접할 수 있다. 각종 빵과 치즈, 햄/소세지 (Wurst), 주류(주로 Wein), 외국산 수입품들도 구입할 수 있다. 특히 주말이나 특별한 때에만 들어서는 야외 시장에서는, 농가에서 직접 가지고 나온, 유기농법으로 재배한 싱싱한 물품들을 구입할 수 있는 매력에, 슈퍼마켓보다 다소 비싼 가격에도 많은 사람들이 찾고있다.
벼룩시장 ( Flohmarkt)
주로 주말에 광장이나 운동장 등에 들어서는 벼룩시장에서는 중고 용품들 뿐 아니라,
싸면서도 품질 좋은 감자나 오렌지, 사과 등을 구입할 수 있다. 주로 토요일에 정기적으로 열리는 이곳에선 재미있는 풍경들을 많이 볼 수 있고 ( 그래서 나도 거의 매주마다 바람 쐬는 기분으로 길을 나서곤 한다. ), 의외로 마음에 드는 가구나 골동품, TV, 헌 책 등을 찾아 흥정해볼 수 있다. 무조건 처음엔 비싸다고 해라. (zu teuer !) 그냥 깊이 생각하는 동안 알아서 깎아주는 경우도 많다. ( 동양인이 생각하는 모습은 무섭다 ? ) 가족들과 구경 나오거나, 보물을 찾는 사람들로 늘 붐빈다.
건강식품점
Muesli를 해먹을 수 있는, 해바라기씨를 비롯한 각종 씨앗, 말린 과일, 당밀 건강식등이 있으며 질 좋은 보리빵 이나 음료수도 판매한다. 일반가게보다 가격은 물론 비싸다.
질로 승부한다 !
--다시 잔소리...--
잘 먹어야 산다 ! 우리나라 사람들은, 머리가 아니라 체력에서 나중에 뒤쳐져버리는 경우가 많다. 특히 혼자사는 총각들. 기숙사에 있으면서, 한국인끼리 만났다 하면 라면이나 삼겹살이 주 메뉴이데, 그보다 외국 친구들과 많이 많이 나눠먹고, 뺏어먹고, 같이 요리를 해봐야 할 일이다.
독일에 온 어떤 신혼부부는 초기 생활의 스트레스를 Mensa(학교식당)에서 먹는 즐거움으로 달래기도 했다. "요즘은 먹는 게 유일한 낙이에요!" 라면서.
"먹는 것"에는 구차하지 않게 풍성히 즐기도록 하자.
우리나라 식으로 먹으려면 역시 돈이 조금 더 들게 마련이다. "아시안 상점"에서 웬만한 것들(양념, 장류, 김, 쌀 라면, 김치, 심지어 소주까지) 구입할 수 있다. 물론 비슷하게나마 양배추로 김치를 담고, 쏘세지와 계란으로 "동그랑땡" 반찬도 해 먹을 수 있겠다.
쌀을 살 때는 "태국쌀"을 사지 않도록- 삐쭉삐쭉한 밥알이 입안에서 날아다닌다. 아시안 상점에서 가마니 단위로 질좋은 일본쌀을 살 수 있으며, 슈퍼에서는 작은 봉지(500g 정도 되는)로 판매하는 Milch Reis 가 있다.
된장국과 오징어, 김치찌개 요리를 할 때, 삼겹살 구워먹을 때는 조심하자. 아니 아무리 조심해도 냄새는 못 속인다 ! 그 맛있는 냄새가 독일 이웃에게는 엄청난 "피해" 가 되기 때문에, 경찰이 출동하기도 한다.
-어떤 남자가, 누나를 자꾸 따라다니길래 저녁식사에 초대를 했단다. Spezial Menu는 청국장 ! 효과 만점이었다.
그 후로 다시는 추근거리지 않았다고 한다. 이상한 냄새, 썩은 냄새 난다고 경찰에 신고되어 경고를 받는 집안도 많다.
쇼핑의 Tip
1. 독일은 영업시간을 늘 잘 알아둬야 한다. 식품상점은 대개 오전 8:30 부터 오후 6시나 8시까지 한다. 토요일은 늦어도 오후 4시면 끝난다 ! 자칫하면 주말에 굶기도 일쑤다. 예외가 있다면 늦게까지, 그리고 주일날도 문을 여는 주유소. 하지만 비싸다. 물론 컵라면의 추억도 없다.
(대도시라면 우리나라처럼 편의점이 있을지 모르겠다. 내가 워낙 시골에 살다봐서 !)
2. 구입한 물건 넣을 가방을 갖고 다니는 게, 알뜰살림을 위한 지혜로운 길. -환경을 고려하여- 봉지하나에 30페니(약 200원) 씩이나 받아먹기 때문이다. 천으로 된 가방( 1DM 이면 산다.) 을 사용하거나, 가게 구석에 버려지는 Box를 이용할 수 있다.
3. 빈병도 돈이다. 역시 환경을 고려하여- 빈병에 일종의 저당금(?)을 붙이는데 꽤 비싸다. Pfand 가 써진 병은 버리지 말고, 꼭 반납해서 현금으로 되돌려 쓰자.
4. 1DM 이나 2DM짜리 동전을 갖고 다니자. 손수레(Shopping cart)에 동전을 넣어야 사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동전은 나중에 다시 돌려 받는다.
5. 슈퍼마켓에서 과일이나 채소류는 많은 종류의 것이 Self-service로 계산하게 되어있다. .
원하는 만큼 봉지에 담아 자동저울에 올려놓고, 해당상품에 button 을 누르면 스티커 영수증이 나온다. 이것을 봉지에 붙이면 된다. 무우, 배추, 오이따위는 개수로 따지기도 하며, 감자나 오렌지처럼 꾸러미로 가격이 붙어 나오는 것들도 있다. Keine Selbstbedienung 이라고 써진 것은 그곳 직원이 직접 퍼다줘야하는 물품들이니 손 대지 말 것..
6. 과일은 농약 재배하는 경우가 많은데, 특히 감귤류는 깨끗이 씻어 먹도록 한다. 레몬이나 귤 껍질로 요리해야할 경우 unbehandelt라고 써진 상표를 구입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7. 백화점의 2번/년 세일기간을 잘 이용하자.
대개 2월(Winterschlussverkauf)과 8월(Sommerschlussverkauf)에 있는데, 마음에 드는 물건 찍어두었다가, 세일시작하면 바로 가서 30-60%싸게 장만하도록 한다.
8. 주말에는 벼룩시장을 산책삼아 자주 이용해본다. 신선한 채소와 과일들을 저렴한 가격에 구입할 수도 있고, 의외로 마음에 드는 생필품이나 골동품, 책들을 건질 수 있다.
9. 각 시장의 성격을 잘 파악하고, 쇼핑계획을 짜두는 습관을 기르자.
& 아플때
독일에서는 환자들이 담당의사(주치의)를 선택할 수 있다. 유럼회원국에서 온 방문객들은 본국에서 법정 보험에 가입해 있고, 증명서를 독일에 가지고 온 경우 무료로 의료서비스를 받을 수 있다. 사설 보험에 든 환자는 독일에서 먼저 의료비를 지불한 후, 나중에 보험회사에 영수증을 제출하고 환불받는다. 이는 비유럽국 국민들에게도 적용된다. 여러 독일보험회사들이 외국인들에게 독일체류기간동안 보험 서비스를 제공한다.
야간이나 주말 및 공휴일 발병에 대비해 응급의료서비스를 운영하고 있다. 또한 약사들도 주야로 24시간 응극서비스를 운영한다. 약국문을 닫을 경우에는 그곳에서 제일 가까운 약국의 주소를 게시하도록 되어있다. 응급서비스에 관한 정보는 일간지의 지역면이나 특별 전화서비스를 통해 얻을 수 있다.
비상시(Notfall) 에는:
전화번호는 110
구급차나 소방서에 신고할 때에는 112
모든 공중전화에서 동전이나, 카드 투입없이 통화할 수 있다.
& 의료보험
독일에서의 의료보험 가입은 선택이 아니라 의무다. (의무 ! ; 안하면 학교 등록도 안된다.)
정식 학생이 되면, 등록과 동시에 보험가입서류를 반드시 함께 제출하도록 되어있다. 일반적으로 30세 미만의 학생인 경우, 매달 지불하는 비용이 대략 105.- DM 정도다. 학생이 되면 보험금의 반이 시로부터 보조가 되기 때문에 저렴한 편이다. AOK, TK 같은 공공의료보험회사가 있다.
하지만, 학생이 되기 전(곧 등록전에)어학과정에 있을 경우에는, 이러한 법적인 보조를 받을 수 없으므로, 본인이 보험전액을 부담해야 한다. 그렇지만 보험에 가입해 두는 것이, 만일의 사고에 대비하거나 한 두번 치과를 가는 정도의 작은 치료에도 유리할 것이다. 독일의 진료 / 치료비, 약값을 우습게 보았다가는 큰 코 다친다. 보험금은 보험회사, 성별, 나이, 조건에 따라 많은 차이가 있으나 관청이나 어학원에서 소개해주는 것을 택하면 무난할 듯 싶다.
그리고 질병이나 사고로 병원을 찾았을 경우나 입원을 하였을 경우, 본인이 지불하는 것은 없고, 치료비와 약값, 입원비용등은 전적으로 보험회사에서 지불되는 것이 원칙이다. 근간에는 처방전비 정도의 소액은 지불하고 있다. (보험신청시 Zuzahlungsbefreiung 이라는 카드를 함께 달라고 하라. 약값을 면제하는 카드다.)
출처: Egal
한국<= =>유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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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m Mariannhof 15 d. 28357 Bremen
Tel: 0421-255 254
Fax:0421-255 274
<*독일에 위치하고 있으며 사장은 독일분이고 부인이 한국분입니다.>
Kunst Akademie / Musik Hochschule
◑ 예능계 고등교육기관 독일의 예술학교는 하나의 연주자나 예술인을 양성하는 데 목표를 두고 있다. 따라서 만 16세 이상으로 예술적 재능만 있다면 지원을 할 수가 있다. 이렇게 독립된 예술대학교가 바로 KUNST AKADEMIE / MUSIK HOCHSCHULE로 불리는 것들이다. (참고로 KONSERVARTORIUM은 그보다 낮은 단계의 음악학교라고 말할 수 있겠다.) 미술분야 -예술사 -각나라의 예술사(아시아 예술사, 이집트 미술사... 등등) -예술교육 -건축 -영화/연극학 -전달매체 다자인 -필름학
음악분야
-음악학 -음악사 -예술사 -음악치료학 -음악교육학 -민속음악학 -마임
미술분야 -회화 -조각 -건축 -무대연출 / - 의상 / -배경 -실내건축 -디자인 / 산업 - / 상업 - / 패션 - / 섬유 - / ... -응용미술 -순수미술 -출판 -유리 / 세라믹 / 메탈 / 플라스틱 / ... -예술교육
음악분야
-기악 -성악 -작곡 -지휘 -연출 -오페라 -무용 -리듬학 -연기 -교회음악 -구연 -음악학 -음향기사학 -ZAZZ -MUSICAL
위에서 분류하였듯이, 실기보다 이론이 중심되는 학과들에 대하여는 일반대학이나 전문대학교에서 강좌를 개설하고 있다. 이런 과목들을 공부하기 위하여는 일반대학의 입학자격인 [고등학교 졸업 / 어학시험(DSH)합격] 이 요구된다. 경우에 따라 실기를 요구하기도 하므로 편지 등을 통해 직접 알아보도록 한다. 대개의 예술학교에서는 MⅡ(중급 2, 집중코스로 약 6개월의 어학수업을 받은 자) 정도의 어학수준을 요구하고 있다. (?말? 편에서 얘기하겠지만, 이정도의 시간은 순수한 어학에 꼭 투자하기를 권한다. )
실기를 위주로 전공하는 27개의 음악학교에서는, 작곡과 같은 창의적인 분야, 기악이나 성악, 지휘와같은 예술적 분석분야, 그리고 음악을 지도하는 교육분야로 내용을 나눠볼 수 있다. 대학과정의 기간은 개인에 따라 다르지만 대략 6-10학기가 소요된다. 졸업시험에 대한 명칭은 각기 다르나 대부분 오케스트라시험(Orchesterpruefung)과 예술적 졸업시험(Kuenstlerische Reifpruefung)의 합격 후, 우리나라 '석사'에 해당하는 Diplom학위를 받는다. 음악대학교에서의 학위는 석사학위이며(Diplom) 졸업시험에서 1점(최고점수)에 들면 졸업 후 ?연주자과정(KONZERTEXAMEN, SOLISTENDIPOM, MEISTERKLASSE)을 이수할 수 있다. 이를 이수하면 ?박사학위?는 아니지만, 독립적인 연주자로서의 자격을 인정받게된다.
학과별 입시에 관한 짧은 힌트를 주자면...
기악과 기악과 입학시험곡은 일반적으로 시대별(바로크, 고전,낭만,현대)로 각 한 곡씩을 준비하여야 한다. 그 외의 시험으로는 초견연주, 기초음악이론, 청음, 피아노 등이 있다. 피아노가 주전공일때는 다른 악기를 선택하여야 한다. 학교와 과목마다 시험요강이 다르다.
성악과 성악과 입학시험곡은 일반적으로 2-3가지의 다른 형식의 곡을 불러야 한다. 이 때 음정의 정확함 뿐 아니라 표현력에 대한 평가도 다룬다. 그 외에 독보력과 음정평가 그리고 따라부르기(NACHSINGEN ; 피아노로 친 짧은 소절을 따라부르는...) 초견시창 등을 본다.
지휘과 지휘과 입학시험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일반음악이론과 상당수준의 피아노 연주를 요구하고 있다. 또한 일반적 지휘에 대한 재능을 시험하며, 초견연주, 전조(TRANSPONIEREN), 총보연주(PARTITURSPIEL) 등도 함께 평가한다.
교회음악과 기독교 및 천주교의 교회음악을 전공하는 것은, 오르간 연주자 및 교회내의 음악담당자나 성가대 지휘자로 교육받는 것과 관련된다. 궁극적으로 졸업생들은, 중요한 모든 음악행사를 주도할 때, 교회 전체의 신뢰감을 줄 수 있어야 한다. 입학시험에는 오르간, 피아노 연주, 음악이론과 그 이론을 실제로 적용할 수 있는지의 여부, 박자와 화성의 이해, 초견연주 등이 평가된다.
작곡과 하나의 악기를 다룰 수 있어야 한다. -피아노가 최상- 음악론의 기본지식, 자신이 작곡한 작품들, 교수에 따라서는 스스로 연주하기를 요구하기도 한다.
음악교육과 이 학업은 음악학교의 교사직이나 자영적인 음악학교 강사를 목적으로 한다.
*참고로 몇 가지 용어들을 정리해 보았다.
이 론 Tonansatz 음악개론 Musiklehre 악 식 론 Formlehre 총 보 론 Partiturkunde 음 향 학 Akustik 음 악 사 Musikgeschichte 전 조 Transponieren 총보연주 Partiturspiel 청 음 Gehoerbildung 음 악 학 Musikwissenschaf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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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은 ('작곡과 졸업생'으로서) Stuttgart Musikhochschule에 '작곡과'로 지원하기 위해 보낸 첫 편지의 예이다. 입학원서와 information을 요구한 내용.
Seoul, 1. April 2001 Bitte um Informationen und Bewerbungsunterlagen Sehr geehrte Damen und Herren, fuer das kommende Semester moechte ich mich an Ihrer Musik Hochschule bewerben und bitte Sie um Zusendung der Informationen und Bewerbungsformulare sowie den Voraussetzungen fuer eine Zulassung. zum __Komposition___Studium.. Ich bedanke mich im Voraus fuer Ihre Bemuehungen und verbleibe mit freundlichen Gruessen.
Kil - Dong Hong
우표(봉투에 6DM 짜리 독일우표나 만국환우표 6장을 동봉하는 것이 정상이다.)
내가 보내야할 것들은 ; * 입학원서 / 이력서 / * 고등학교 성적 및 졸업 증명서(고1까지 다녔다면 그 때까지의 성적증명 / 재적증명 * 대학을 다녔다면 대학 성적 / 졸업 증명서. 즉, 우리나라에서는 최소한 ?고 1? 까지는 마쳐야 하는데, 자기가 이수한 최종학교의 최종 증명(성적 그리고 재학이나 졸업증명 ) 서류를 보내면 된다. * 시험준비곡(시대별로 1곡, 작곡 전공은 자기작품) / 어학증명서 (M2 정도를 요구) / 여권용 사진 3장 / 소정의 수수료 ( 20 DM) / 반송용 만국환 우표 6장
각 학과에 대한 정확한 지원자격과 전형방법, 제출서류는 학교마다 많은 차이를 가지고 있어 각 대학에서 발행하는 안내서를 참조하여야 한다. 특히 외국학생들인 경우 우리나라에서의 학력인정등의 문제가 있어, 지원하고자 하는 학교에 서류를 갖춰 문의하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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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 등 시각예술 학교의 입학과정 또한 비슷하다. 다만, '실기시험'보다 교수와의 면접에서, 자신의 포트폴리오를 보여주며 설명하는 형식으로 입학여부를 가늠하기 때문에, 교수와의 대면이 가장 중요한 문제다. 출처: 카페ega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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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험의 목적 Zweck der Pruefung
독일대학에서 공부할 수 있는 자격을 얻으려면 외국인은 충분한 독일어지식( ausreichende Deutschkenntnisse)을 소지하고 있음을 증명해야 한다. 이를 위해 "외국인 학업지망자의 대학입학을 위한 독일어시험"[Deutschen Sprachpruefung fuer den Hochschulzugang auslaendischer Studienbewerber" (DSH)]성공적으로 통과해야 한다. 그러니까 이 시험은 외국인이 독일대학에서 공부하기 위한 일종의 입학시험인 셈이다.
모든 외국인 학업희망자는 이 시험을 통해 독일대학에서 성공적으로 학업을 이수하기 위해 필요한 충분한 독일어지식이 있음을 증명해야 한다. 즉 이 말은 다시 말해서 이 시험은 외국인 학업희망자는 이미 독일어로 강의를 듣고 이해할 수 있는 수준이 되어 있는지를 테스트한다. ◀ ▲
▶ 응시자격 Zulassung zur Pruefung:
DSH는 입학의 전제이기 때문에 시험을 치를 수 있는 자격이 있는지의 여부는 대학당국이 결정한다.더 구체적으로 말해서 입학지원서를 처리하는 외국인 학생행정사무처(Akademisches Auslandsamt)에서 결정한다.
시험은 보통 지원자가 학업을 하고자 하는 대학교에서 행해진다.
DSH시험응시를 또 다른 자격요건으로는 어학지식획득을 위해 어학연수를 했다는 것에 대한 증명서가 필요하다. 적어도 800시간이상의 독일어수업을 이수했을 것이 요구된다. 이것은 대략 괴테연구소에서 중급 2나 3(Mittelstufe II bis III)에 해당한다.
몇몇 경우는 학업지망자가 DSH를 치러야 되는 의무사항을 면제받을 수 있다. 이에 대한 정보는 외국인학생행정사무처에서 교부한다. ◀ ▲
▶ 시험의 시행 Durchfuehrung der DSH
시험은 매년 2회 개최된다. 보통 3월과 9월에 있게 된다. 그러니까 신학기가 시작되기 대략 한달전쯤 된다.
시험은 크게 두부분으로 나뉘어진다. 필기시험과 구두시험이 그것이다. 이 두시험은 일주일간격을 두고 행해진다.
시험중간에는 사전이나 그밖의 보조수단은 허용되지 않는다.
시험시간은 대략 중간휴식을 포함해서 4시간이 걸린다. 각각의 시험은 두부분으로 나뉘어 치러진다. ◀ ▲
▶ 필기시험의 구성 Schriftliche Pruefungsteile:
▷ 1. 텍스트 재현 Textwiedergabe:
대략 60줄정도 길이의 텍스트가 두번 낭독된다. 응시자는 두번째 낭독 때부터 필기를 해도 되도록 허용된다.
응시자는 자신이 메모한 내용을 참고하면서 낭독된 텍스트를 재현하면 된다. 즉 이때 텍스트의 내용을 약간 더 짧은 형식으로 자신의 어휘력을 사용해서 재현하는 것이다.(den Inhalt in leicht gekuerzter Form in eigenen Worten wiederholen)
낭독되는 텍스트는 어떤 전문지식을 전제하지는 않으나, 학문적인 연관성은 가지고 있다. 텍스트재현시에 특히 높게 평가받는 항목은 내용적인 정확성이다.
텍스트재현시험시간은 90분이다. ◀ ▲
▷ 2. 텍스트가공 Textbearbeitung
2a. 문장의 이해와 가공 그리고 주어진 선텍스트를 바탕으로한 텍스트작성Verstehen und Bearbeiten eines Lesetextes und vorgabenorientierte Textproduktion
약 45줄정도로 요약된 텍스트가 주어진다.(대략 DIN A4 용지한장이 조금 넘는 분량). 이 텍스트를 놓고 5개에서 6개의 내용에 대한 서면질문과 한개의 코멘트질문이 제기되는데 응시자는 이때 A4용지 반정도의 분량한도내에서 자유롭게 질문된 테마에 대해 의견을 개진하면 된다.
텍스트재현시험에서처럼 시험텍스트는 어떤 전문지식을 전제하지 않으나 학문적인 연관성이 있는 내용이다. 이 시험에서도 특히 내용적인 정확성이 높게 평가받는다.
시험시간은 60분. ◀ ▲
2b. 학문언어적인 문장구조의 이해와 가공 Verstehen und Bearbeiten wissenschaftssprachlicher Strukturen
이 시험에서는 공란이 들어간 텍스트가 제시된다. 이 공란에는 전치사와 부사, 관사 등이 채어져야 한다. 응시자는 또한 구문을 변형할 수 있는 능력이 있어야 한다.(수동태와 능동태간 구문변형, 명사화구문과 동사화구문간의 구문변형)
이를 위해서는 전치사와 부분장 화법조동사와 Konjunktiv I, II에 대한 사전지식이 있어야 한다.
텍스트문범적인 해명뿐만 아니라 단어를 설명할 수 있는 능력도 요구된다. 그러니까 문법적인 지식만으로는 이 전체시험을 합격하는데 충분하지 않다. 왜냐하면 전체사정평가에서 문법부분은 다른 시험항목보다 비중이 낮기 때문이다.
시험시간 30분. ◀ ▲
▶ 구두시험의 구성항목 Muendlicher Pruefungsteil:
구두시험은 필기시험을 합격한 모든이에게 반드시 필수의무사항이다.(obligatorisch)
시험은 대담형식으로 진행된다. 이 대담은 특히 소통능력을 측정하기 위한 것이다.
또 대담시 응시자가 선택한 전공과목을 대변하는 한명의 전공검토시험관도 그 자리에 합석하고 있어서 전공과 관련해 내용적인 질문을 던지게 된다.
시험시간은 20분. ◀ ▲
▶ 시험합격증 Bescheinigung:
시험에 합격하면 증명서가 교부된다. 여기에는 성적은 포함되어 있지 않으며 단지 "합격"했다는 사실만이 표기된다.
이 증명서는 응시자의 일반적인 독일어능력에 대한 어떤 확증을 해주는 것은 아니며 그래서 대학을 떠난 다른 목적을 위한 능력층적은 아니다. 이 증명서는 단지 응시자가 언어적인 측면에서 독일대학에서 학업을 할 수 있는 위치에 있다는 것만을 말해준다.◀ ▲
▶ 불합격과 재응시 Nichtbestehen und Wiederholung:
DSH 시험은 보통 한번 더 재응시할 수 있다. 재응시는 빨라도 다음학기의 차기시험일자에만 가능하다.
(이상은 Hohenheim 대학의 1997.6.25일 발표된 시험규정임)
▶ 추가문의사항이 있을 시는 다음으로 문의할 것
Frau Ulla Stiernskog-Migliore
Sprechstunde: mittwochs 9.00 bis 10.00 Uhr, Tel.: (++49) 711 / 459-3839
Postanschrift: Universitaet Hohenheim, Sprachenzentrum (660), D-70593 Stuttgart
Hausadresse: Universitaet Hohenheim, Mobile Raumzelle, Zimmer 13, Emil-Wolff-Str. 30 b, D-70599 Stuttgart-Hohenheim ◀ ▲
외국인 독일대학입학자격 어학시험 DSH 견본
Deutsche Sprachprufung fur den Hochschulzugang auslandischer Studienbewerber (DSH)
(Musterprufung)
I.TEXTWIEDERGABE
Im Dialog mit Deutschen: Kampagne der Deutschen Zentrale fur Tourismus
Machen Sie sich ein richtiges Bild von Deutschland: Das ist das Ziel der DZT [Deutsche Zentrale fur Tourismus], die außer mit Sehenswurdigkeiten mit Gesprachskreisen und personlichen Gesprachen Reiselustige wirbt.
Von April an konnen Gaste aus dem Ausland in Deutschland nicht nur Sehenswurdigkeiten wie das Brandenburger Tor, die Alpen oder die Nordseeinseln besuchen, sondern werden auf Wunsch auch von Deutschen zum Gedankenaustausch empfangen.
Die Zahl der Deutschland-Besucher ist wahrend der vergangenen drei Jahre kontinuierlich zuruckgegangen. Wahrend 1990 noch 28 Millionen auslandischer Gaste ins Land kamen, waren es 1993 nur noch 23 Millionen. Das hat verschiedene Grunde. Die weltweite Rezession, die gestiegene Arbeitslosigkeit, die Wechselkursschwankungen wie auch die Preissteigerungen in Deutschland haben viele potentielle Besucher von einer Reise nach Munchen, Heidelberg oder an den Rhein abgehalten. ?Die Leute haben einfach weniger Geld zur Verfugung“, stellt der stellvertretende Marketingdirektor der Deutschen Zentrale fur Tourismus, Ewald Meister, fest. Auf der anderen Seite konnten Zeitungsleser und Fernsehzuschauer im Ausland im vergangenen Jahr den Eindruck gewinnen, Deutschland sei ein Land von Neonazis und auslanderfeindlich. Dieses Bild ist naturlich falsch. Rechtsradikale Gruppierungen und Menschen, die fur deren Parolen anfallig sind, bilden eine verschwindend kleine Minderheit, die keinen Ruckhalt in der Bevolkerung findet. Doch da die Medien bekanntlich meist nur uber Sensationen und Zwischenfalle berichten, denken jetzt viele Burger in Asien oder Amerika, sie konnten sich in Deutschland nicht mehr sicher bewegen. Um dieser Tendenz entgegenzuwirken, hat die Deutsche Zentrale fur Tourismus, die im Auftrag der Bundesregierung Fremdenverkehrswerbung betreibt, die Kampagne ?Im Dialog mit Deutschen“ gestartet. Ziel ist es, auslandische Gaste mit deutschen Burgern ins Gesprach zu bringen. Wer Interesse hat, Informationen uber sein Gastland aus erster Hand zu bekommen, wer die Mentalitat der Deutschen kennenlernen will, wer etwas vom Alltagsleben der Bayern oder Rheinlander mitbekommen mochte, kann sich kunftig Gesprachspartner vermitteln lassen.
Die Aktion richtet sich vor allem an Gaste aus den Vereinigten Staaten, den Niederlanden und Großbritannien, Lander, in denen die Bevolkerung besonders empfindlich auf die fremdenfeindlichen Zwischenfalle in Deutschland reagiert hat. Aber auch Gaste aus allen anderen Staaten der Erde sollen angesprochen werden. Die Modalitaten sind einfach. Gaste, die sich gerne mit Deutschen treffen mochten, konnen in den Auslandsfilialen der Deutschen Zentrale fur Tourismus oder in Reiseburos die Broschure ?Gastfreundliches Deutschland“ bekommen. Darin sind alle deutschen Stadte aufgefuhrt, die sich an der Aktion beteiligen. Die Fremdenverkehrsburos dieser Stadte vermitteln personliche Begegnungen mit deutschen Burgern. Sie organisieren zum Beispiel ?Internationale Stammtische“, bei denen sich Besucher etwa mit Wirtschaftsleuten, Politikern oder Kirchenvertretern unterhalten konnen. [...]
Die Kampagne ?Im Dialog mit Deutschen“ beginnt am 1. April und dauert bis Ende Oktober. Man wolle jedoch die Aktion aller Wahrscheinlichkeit [nach] auch danach fortsetzen, kundigte Marketing-Fachmann Meister von der Tourismuszentrale an. Seit Mitte Februar lauft seinen Angaben zufolge mit gutem Erfolg ein Pilotprojekt mit den Stadten Augsburg, Fulda, Leipzig und Bad Honnef. Die erste Resonanz auf die Kampagne sei vielversprechend.
Quelle:
Deutschland. Zeitschrift fur Politik, Kultur, Wirtschaft und Wissenschaft, Nr. 2, April 1994, S. 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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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I. TEXTBEARBEITUNG
Elektronische Geldborse im Test
Rund 80.000 Bundesburger haben sie schon - die elektronische Geldborse. Seit Ende Marz 1996 lauft der Pilotversuch, bargeldlos mit der GeldKarte zu bezahlen, mit gutem Erfolg. Bevor die GeldKarte allen Kunden bundesweit angeboten wird, muß sie in einem letzten Test in den Stadten Ravensburg und Weingarten ihre Tauglichkeit im Alltagsgeschaft unter Beweis stellen. Ab 1997 wird die elektronische Geldborse bundesweit ihren Platz in den Brieftaschen der Kunden finden.
Kein Kleingeld an Automaten der Straßenbahn oder im Parkhaus - jeder kennt die Situation, wenn die notigen Markstucke oder Groschen fehlen. Mit der elektronischen Geldborse gehort die Suche nach dem passenden Wechselgeld der Vergangenheit an. Doch wie sieht eine solche Geldborse, die GeldKarte, aus? Die normalen ec-Karten und die Bankkarten der Kreditinstitute werden mit einem Mikrochip ausgestattet. Dieser elektronische ?Speicher“ kann mit Geldeinheiten aufgeladen werden. Bis zu 400 Mark kann der Kunde durch die Bank auf seine GeldKarte laden lassen. Der entsprechende Gegenwert wird dann vom Girokonto des Kunden abgebucht oder vom Kunden bar bezahlt. Die GeldKarte kann auch ohne ein Konto bei der Bank gekauft werden. Dabei handelt es sich dann um eine reine Wertkarte ohne die zusatzlichen Funktionen der ubrigen Bank- oder ec-Karten. Dies ist besonders fur Touristen oder Jugendliche interessant, die vor Ort kein Konto bei einer Bank haben. Damit steht dem Einkaufen und Bezahlen mit der GeldKarte nichts mehr im Weg. Wenn das elektronische Geld ausgegeben und das neue Portemonnaie leer ist, kann die GeldKarte einfach wieder bei der Bank aufgeladen werden.
Die neue GeldKarte ist fur die alltaglichen Kaufe und Besorgungen konzipiert. Gleich ob Parkschein- oder Fahrscheinautomat, Backer oder Kaufhaus - die neue GeldKarte laßt sich an allen Kassen einsetzen, die uber ein entsprechendes Lesegerat verfugen. Das GeldKarten-Zeichen zeigt, ob an der Kasse die neue Art, bargeldlos zu bezahlen, moglich ist.
Beim Bezahlen wird die neue GeldKarte in das entsprechende Kassengerat gesteckt und der Rechnungsbetrag nach der Bestatigung durch den Kunden vom Guthaben auf dem Chip abgezogen.
Quelle:
?Elektronische Geldborse im Test“, in : Bonus. Das Magazin der Volksbank Reutlingen eG, Heft Nr. 7, Juli 1996. ◀ ▲
Fragen zum Text:
1. Was ist die ?elektronische Geldborse“?
2. Kann uberall mit der elektronischen Geldborse bezahlt werden oder welche Voraussetzung muß dafur erfullt sein?
3. Fur welche Gelegenheiten ist die elektronische Geldborse gedacht?
4. Konnte man damit Großeinkaufe machen?
5. Muß man ein Girokonto haben, um eine Geldkarte zu bekommen?
6. Kommentar:
Was halten Sie von dem neuen Trend, immer mehr bargeldlos einzukaufen. Außern Sie sich zu Vorteilen und Gefahren des bargeldlosen Einkaufs.
(Ihr Kommentar sollte etwa eine halbe DIN A4-Seite fullen.) ◀ ▲
III. GRAMMATIK
A) Erganzen Sie Prapositionen, Artikel und Endungen.
1. ........ der elektronischen Geldborse gehort die Suche ........ dem passenden Wechselgeld ............ Vergangenheit an.
2. Dabei handelt ........ sich dann .......... eine reine Wertkarte ohne ........ zusatzlichen Funktionen der ubrigen Bank- oder ec-Karten.
3. Dies ist besonders .......... Touristen oder Jugendliche interessant, die ......... Ort kein Konto bei .......... Bank haben.
4. ........ Ende Marz 1996 lauft der Pilotversuch, bargeldlos ......... der GeldKarte zu bezahlen, mit gut....... Erfolg. ◀ ▲
B) Setzen Sie den folgenden Satz vom Passiv ins Aktiv oder umgekehrt.
Beispiel: Der Hausmeister schließt die Tur ab. > Die Tur wird vom Hausmeister abgeschlossen.
1. Dieser elektronische ?Speicher“ kann mit Geldeinheiten aufgeladen werd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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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C) Erklaren Sie die Bedeutung der unterstrichenen Worter:
1.Bis zu 400 Mark kann der Kunde durch die Bank auf seine GeldKarte laden lass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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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 die neue GeldKarte laßt sich an allen Kassen einsetzen, die uber ein entsprechendes Lesegerat verfug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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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Damit steht dem Einkaufen und Bezahlen mit der GeldKarte nichts mehr im We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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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r entsprechende Gegenwert wird dann vom Girokonto des Kunden abgebucht oder vom Kunden bar bezahlt.
...............................................................................................................
............................................................................................................... ◀ ▲
D) Formulieren Sie die folgenden Satze nach diesem Beispiel um:
Beispiel: Weil ich mich erholen will, fahre ich an die Nordsee. > Zur Erholung fahre ich an die Nordsee.
1. Beim Bezahlen wird die neue GeldKarte in das entsprechende Kassengerat gesteckt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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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Bevor die GeldKarte allen Kunden bundesweit angeboten wird, muß sie in einem letzten Test in den Stadten Ravensburg und Weingarten ihre Tauglichkeit im Alltagsgeschaft unter Beweis stell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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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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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 Setzen Sie folgenden Text in die indirekte Rede:
Bevor die GeldKarte allen Kunden bundesweit angeboten wird, muß sie in einem letzten Test in den Stadten Ravensburg und Weingarten ihre Tauglichkeit im Alltagsgeschaft unter Beweis stellen.
In der Zeitung stand, ...................................................................................
..................................................................................................................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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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 Formulieren Sie den folgenden Satz nach diesem Beispiel um:
Beispiel: Eine nicht zu losende Aufgabe. > Eine Aufgabe, die nicht zu losen ist.
1. [...]die neue GeldKarte laßt sich an allen Kassen einsetzen, die uber ein entsprechendes Lesegerat verfugen.
..................................................................................................................
..................................................................................................................
..................................................................................................................
독일대학의 일반 학제 (Schulsystem von Deutschland)
독일의 대학은 모두 국립이므로 등록금이 따로 없으며 학생회비(한학기 150 DM)만 지불하면 각종의 많은 혜택을 누릴 수가 있다. 그러나 통일된 이후로 사정이 좋지 않아 장학금과 함께 많은 사회혜택(Sozialhilfe)이 없어진 상태이다. 더욱이 일부에서는 등록금을 내야한다는 여론이 일고 있기도 하다.
반사회주의(아니면 복지주의?)에 가까운 나라인지라 학교의 레벨차는 없으며 학교마다의 상이한 커리큘럼만 존재할 뿐이다. 권위있고 실력있는 전공교수에 따라 학교의 교육방법과 성향이 결정되기 때문에 대부분의 학생은 자기의 적성에 맞는 학교를 찾아 별어려움 없이 전국각지로 떠난다. 그러나 건축과인 경우는 많은 학생이 대도시를 선호하는 편이다.
독일의 학제는 크게 디플롬(Diplom)과 부전공을 의무적으로 해야하는 마기스터(Magister)로 나뉘는데 공과대학의 대다수의 학과가 디플롬(Diplom)으로 편제 되어 있다.
보통 디플롬(Diplom)은 다시 예비과정(Grundstudium) 4학기와 본과정(Hauptstudium) 4-5학기로 구성되며 학기중이나 방학 동안에 실습(Praktikum)을 마친 뒤 졸업논문이나 작품을 성공리에 발표를 하면서 졸업하게 된다.
학기(Semester)는 겨울학기(Wintersemester: 10月初-2月末)와 여름학기(Sommer-semester: 4月初-7月末)가 있으며 시작학기가 겨울학기인것이 우리와는 조금 다르다.
출처: egal
가. 게르만족의 대이동과 로마제국의 멸망
중앙 아시아의 유목 민족인 훈족의 게르만족의 한 분파인 동고트족에 대한 공격으로 게르만족의 본격적인 이동이 시작(375 AD) 476년 서로마는 아프리카로부터 내습한 반달족의 약탈을 받아 국위가 크게 쇠약해진 상태에서 게르만의 용병대장 오도아케르(Odoacer, 434∼493)의 침입에 의해 멸망 여러 게르만 왕국들은 숫적.문화적 열세, 종교적 갈등으로 대개 단명하고, 프랑크 왕국만이 혼란을 수습, 새로운 유럽세계 형성의 중심으로 부각
나. 프랑크 왕국의 흥망
메로빙(Merovinger) 왕조(481∼751) - 메로빙 왕조 창시자인 클로비스(재위 481∼511)는 프랑크부족을 병합하고 갈리아 지방을 통합하였으나, 사후 왕조 분열이 계속되어 왕권은 유명무실 - 이에따라 정치의 실권은 귀족 대표인 궁재(Mojor Domus)의 수중에 들어감(대표적인 궁재는 투르푸와티에 전투(732)에서 이슬람군의 침입을 격퇴한 카롤루스 마르텔)
카롤링거(Caroinger) 왕조(751∼843) - 카롤루스 마르텔의 아들 피핀 (재위 751∼768)이 메로빙 왕가 마지막 왕인 킬데리히 2세(재위 742∼752)를 폐위시키고 즉위 - 피핀의 손자인 카롤루스 대제(재위 768∼814)가 서로마 황제로 등극(800)
프랑크(Frank) 왕국의 분열 - 프랑크족 고유의 분할 상속에 따라 카롤루스 대제 사후 골육상쟁이 전개되었으며, 왕권이 급격히 약화 - 베르덩 조약(843) : 카롤루스 대제의 장남 로타르가 황제 칭호와 함께 중프랑크를, 차남 카롤루스 2세가 서프랑크를, 삼남 루드비히 2세가 동프랑크를 차지 - 메르센 조약(870) : 동 조약으로 오늘날의 독일(동프랑크), 프랑스(서프랑크), 이탈리아의 기틀이 마련
다. 신성로마제국의 성립과 해체
신성 로마제국(제1제국 : 962-1806)의 성립 - 동프랑크의 콘라드1세 사후 Heinrich 1세(919-936)의 아들 Otto 1세 (936-973)가 집권 - 오토 1세는 962년 교황 요하네스 12세로부터 신성 로마제국의 황제의 관을 수여받음.
신성로마제국의 해체 - 신성로마제국 역대 황제들이 국내문제보다 이탈리아 문제에 깊이 간여, 제후들의 독립 경향 촉발 - 1438년이후 오스트리아의 합스부르크가가 황제권을 세습하여 오다가, 1806년 나폴레옹에 의해 해체, 라인동맹으로 대체 - 라인동맹은 1815년 비엔나회의 결과로 독일 연방으로 변경
라. 프로이센의 등장과 독일 통일
프로이센의 등장 - 프로이센은 원래 13세기경에 독일 기사단이 개척한 곳으로 30년전쟁(1618-1648) 이후부터 국가의 형태를 갖추기 시작 - 대선제후 Friedrich Wilhelm(1640-1688)은 중앙집권을 강화하고, 아들 Friedrich I(1688-1713)는 에스파냐 왕위계승전에서의 공로로 프로이센 왕의 칭호를 얻음.
프로이센의 발전 - 18세기초 프리드리히 빌헬름 1세(재위 1713∼1740)때 절대 왕정의 기초를 확립 - 프리드리히 2세("프리드리히 대제", 재위 1740∼1786)때 오스트리아 왕위계승 전쟁과 7년 전쟁에서 승리, 유럽의 강대국으로 발전하는 기틀 마련
프로이센에 의한 독일 통일 - 1862년 프로이센의 수상이 된 비스마르크(1815∼1898)는 오스트리아를 제외한 프로이센 중심의 통일(소독일주의)을 주장하고, 보·오, 보·불 전쟁에서 승리, 독일 통일을 이룩 ·프로이센은 1867년 오스트리아와 남부 독일의 4개국을 제외한 21개국을 결속하여 북부 독일연방을 결성하고 맹주로 등장 ·비스마르크는 에스파냐 왕위 계승문제를 이용, 프랑스에 전쟁을 도발, 나폴레옹 3세의 항복을 받고 파리를 정복(1868)
독일 제2 제국의 성립(1871) - 파리 교외의 베르사이유 궁전에서 프로이센왕인 빌헬름 1세(재위 1871∼1888)가 황제로, 비스마르크가 재상으로 취임하여 통일된 독일제국 수립(25개로 구성된 연방국가) - 상원인 연방의회(Bundesrat)와 하원인 제국의회(Reichstag)가 구성, 입법부 구실을 하였으나, 실질적 권한은 황제와 제상이 보유
마. 독일제국과 제1차 세계대전
독일제국의 팽창주의적 대외정책 추진 - 1890년 비스마르크 은퇴후 젊고 모험적인 새로운 황제 빌헬름 2세(재위 1888∼1918)는 범 게르만주의를 표방하고 "신행로 정책"이라 불리우는 적극적인 세계정책을 추진, 국제적 긴장 조장 - 시효가 다 된 러시아와의 재보장 조약 갱신을 거부하고, 1898년에는 영국의 해군력에 도전, 치열한 건함 경쟁 촉발
1차 세계대전 發發(1914) - 세르비아인의 오스트리아 황태자 페르디난드공 암살사건(1914.6.28)으로 폭발, 제1차 세계대전 발발로 연결 - 동맹군측 : 독일, 오스트리아, 오스만투르크, 불가리아 - 연합군측 : 영국, 불란서, 러시아, 이탈리아, 일본
1차 세계대전 패배 - 1918.11월 1차 세계대전 패배후 독일제국은 붕괴되고 바이마르 공화국(Die Weimar Republik) 성립
바. 바이마르 공화국의 수립과 시련(1919∼1933)
바이마르 공화국 수립 - 1918년 혁명이 일어나 호엔촐레른 왕가의 빌헬름 2세는 네덜란드에 망명하고, 독일은 군주제에서 공화제로 전환 - 1919년 2월 바이마르 헌법을 제정하여 18개 공화국으로 구성되는 연방 공화국임을 선포하고, 초대 대통령으로 사회 민주당의 Friedrich Ebert(1871∼1925)를 선출
바이마르 공화국 시련 - 바이마르 공화국은 좌익과 우익 양쪽으로부터 공격을 받는 등 공화국 출범 초기부터 시련에 봉착 · 좌익 스파르타쿠스단이 소비에트를 조직, 1918년말부터 1919년초까지 혁명기도 · 히틀러의 나찌당은 1923년 뮌헨에서 공화국 타도 쿠데타를 일으켰으나 실패 - 그러나, 이러한 정치적 시련에도 불구하고 바이마르 공화국 정부는 통화개혁(슈트레제만 개혁) 등 일련의 적극적인 戰後 복구책 실시로 독일재건의 기틀을 마련하였으며, 외교적인 측면에서 볼 때도 로카르노 조약으로 국제연맹에 가입(1926), 不戰 조약에도 서명(1929) 하는 등 상당한 성과 거양
사. 나찌즘의 등장과 제2차 세계대전(1933-1945)
나찌즘의 등장 - 농민을 포함한 중소 시민층과 국수주의자, 대자본가의 지지를 받는 아돌프 히틀러(1889∼1945)가 이끄는 나찌당(Nazis ; 국가 사회주의 독일 노동당)이 전후 독일의 강력한 정치 세력으로 대두 - 1933년 히틀러는 재상 겸 총통이 되어 바이마르 공화국을 해체, 제3제국 수립
제2차 세계대전 發發 - 독일의 인근 영토확장에 따라 국제적 긴장 조장 · 1938년 3월 오스트리아 병합 · 1938년 9월 뮌헨회담을 통해 주데텐란트 합병 · 1939년 3월 체코슬로바키아 영토 점령 및 단치히(Danzig) 자치시 병합 · 1939년 8월 독.소 불가침조약을 비밀리에 체결한후 9월 1일 폴란드 침공 - 영국·프랑스는 기존의 유화정책을 포기하고 1939년 9월 3일 독일에 선전포고, 제2차 세계대전 발발
제2차 세계대전 패전 - 독일의 승세는 1941년 가을부터 다음해 봄에 이르는 시기까지 절정에 달하였으나, 1942년 여름부터 연합군의 총 반격이 시작됨에 따라 수세에 몰리게 되었으며 1945.5 마침내 항복 - 패전후 독일은 미.영.불.쏘 4대전승국에 의해 분할점령
아. 제2차대전 이후 정세 및 독일 재통일(1945-1990)
戰後 정세 - 전후 통일독일 정부수립을 위한 동.서간 교섭이 실패하고 냉전이 구체화되자 1949년 서방 점령지역은 통화개혁을 단행, 경제통합을 실시 - 1949.5월 잠정 헌법인 "기본법(Grundgesetz)"을 제정하고 1949.9.21 독일연방공화국(BRD, 서독) 수립 - 이에대해 소련 점령지역도 1949.10.7 독일민주공화국(DDR, 동독) 수립을 선포함으로써 독일은 동·서독 양독으로 분단 - 1954년 체결된 파리협정이 1955년 발효됨에따라 서독은 주권을 회복 ·서독은 1958.5월 NATO 및 서구연합(WEU) 가입, 동독은 1950.9월COMECON, 1955.9월 WARSAW 조약기구에 가입. - 서독정부는 60년대초 미국의 경제원조와 사회적 시장경제체제를 통한 경제재건정책의 성공으로 획기적인 경제발전을 이룩하였고 대외적으로는 "할슈타인" 원칙에 따라 동독 불승인 정책을 고수
동·서독간 교류협력 및 독일 통일 - 1969.10월 사회민주당(SPD)의 빌리 브란트 수상 등장과 함께 서독정부는 "동방정책"(Ostpolitik)으로 쏘련, 동구권과의 관계개선과 동독과의 교류를 과감히 추진, 1972.12월 동.서독간 기본조약을 체결하고 유엔에도 동시 가입(73.9)함으로써 양독간의 공존 관계를 이룩 - 東方政策에 바탕을 둔 서독정부의 부단한 대동독 교류 및 협력강화와 특히 고르바쵸프 집권이후의 동구의 개혁무드 및 89.11월 베를린 장벽 붕괴로 양독간 통일무드는 급속히 고조 - 이에따라 90.5.18 양독간 화폐.경제.사회 통합조약 서명, 90.8.31 양독간 통일조약 서명 및 90.9.12 전승 4개국에 대한 독일통일을 양해하는 조약("2+4"조약)의 서명을 통해 90.10.3을 기하여 독일 통일 완성 자. 통일독일시대(1990.10- )
(1) Helmut Kohl 총리(기민당) 후반기(90.10-98.10)
독일의 통일과 동구권 국가들의 몰락으로 형성된 새로운 국제질서하에 독일과 우방국가들은 완전히 새로운 도전에 직면 - 신연방주의 재건과 독일의 내적 통일 완성 - 유럽연합의 심화·확대 발전 - 지구적 차원이 평화 및 안보체제 수립 독일은 주변국가들의 통일독일에 대한 우려를 불식시키기 위해 유럽속의 독일을 강력히 추진 - 유럽경제의 1/3을 차지하고 있는 독일 경제의 상징인 마르크(DM)를 포기, 유럽경제·화폐 통합(EMU)을 적극 추진 - 국제평화유지 활동에 적극 참여 동·서독간의 경제적 통합은 유럽통합의 틀안에서 그리고 탈냉전 이후 지구적 차원의 새로운 정치·경제적 구조하에서 추진 - 동·서독간의 사회적, 심리적 장벽 극복이 과제 (2)Gerhard Schröder 총리(사민당) 시대(98.10-현재)
98.9.27 총선에서 사민당이 승리, 녹색당과 연립정권 출범 - 2차 대전후 선거를 통한 최초의 여·야 정권 교체 슈뢰더 총리는 신중도(Neue Mitte) 이념으로 각종 개혁 정책을 추진중이나, 사민당내 이념 갈등과 사회복지 축소에 대한 국민의 반발 등 정권 출범 초기 어려움에 직면 - 98.10 정권출범후 실시된 주의회 선거에서 계속 패배 베를린 시대의 개막 - 99.5.23 선거에서 Johannes Rau 대통령(사민당) 선출 - 연방정부와 의회는 99.9.1을 기해 베를린에서 공식업무 개시 1999년은 독일정부 수립 50주년, 베를린 장벽붕괴 10주년의 해로서 독일의 새로운 위상 정립과 역할 강화 모색 - "독일 개혁 : 고용, 성장 및 사회안정을 위한 미래 프로그램" 발표(99.6.23) 현 사민/녹색연정은 국내적으로 2000년도 세제개혁에 이어 2001년 5월 연금개혁 및 6월 구동독지역에 대한 재정지원 계획(SolidarpaktⅡ)을 마무리하는 한편, 대외적으로는 EU통합과정에서 주도적 역할을 수행중
(2002.11.04 정무과 점검)
출처: 기덕이 카페 ega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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